[스포츠보기] 그린피 올려야 명문골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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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골프장들은 너도나도 명문을 자칭한다. 반세기의 연륜을 갖춘 골프장은 스스로 전통의 명문이라 부르고 이제 막 개장한 골프장들은 신흥 명문이라고 자랑한다.

훌륭한 코스를 갖췄는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고 서비스의 질이나 운영체계, 회원의 많고 적음 등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명문이라고 내세운다.

모두가 명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막상 가보면 페어웨이에 잔디보다 흙이 더 많은 클럽, 겹치기.끼워넣기 등으로 부킹 시간을 안 지키는 클럽, 친절이나 서비스가 뭔지도 모르는 종업원을 두고 있는 클럽 등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골퍼들은 헷갈린다.

올 봄 일부 클럽들이 명문임을 앞세워 그린피를 올리자 각 골프장들이 너도나도 그린피를 인상했다. 그린피를 올리지 않으면 명문이 아닌 셈이니 주저할 골프장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3류 골프장까지 그린피를 올려 골퍼들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

한국의 골프장들이 마음대로 명문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명문 클럽' 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모델이 없으니 명문이라고 나서도 할 말이 없다.

한글학회 사전에 명문이란 명가(名家), 이름있는 학교, 훌륭한 학교로 정의돼 있다. 또 일본 삼성당(三省堂)의 사전은 '유서 깊은 집안' , 웹스터는 '뛰어난 전통이 계승돼 그 힘을 발휘하는 같은 조상의 집단' 으로 각각 풀이해 놓고 있다. 명문을 자칭하는 골프장 중 과연 몇개나 이러한 정의를 충족시키는지 의문이다.

미국의 골프 전문 월간지 골프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2년마다 "세계 1백대 명문 골프장" 을 선정한다.

미국 전역에서 핸디캡 한자릿수의 자원봉사 골퍼 8백여명을 선발한다. 이들은 자기 돈으로 골프장에서 경기를 하면서 평가항목에 따라 1(불만족)~10점(완벽)까지 점수를 매긴다. 골프다이제스트는 이를 집계, 골프장의 순위를 정한다.

평가 항목에는 코스의 난이도, 홀별 길이나 형태의 다양성을 따지는 디자인, 아름다움을 묻는 심미성, 기억성, 코스 관리 상태, 전통, 걷기의 편리성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아름답다고 명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어렵고 비싸다고 명문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8개 요소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아야 가능하다.

명문 골프장에 대한 판단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골프 코스, 운영 주체, 그리고 회원들을 평가하면 된다. 골프 코스는 미적 가치와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따지면 되고 운영은 부킹의 합리성이나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면 된다. 많은 골퍼가 회원이 되고 싶어하는 클럽, 회원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는 클럽에 많은 점수를 주면 된다.

우리도 이제는 진정한 명문 골프장을 뽑도록 하자. 그래야 그린피 인상 때도 차별화가 가능하고 골퍼들도 형편에 맞는 골프장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골프협회나 골프장사업협회가 적극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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