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심한 불산 사태 … 재난안전관리체계 뜯어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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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부는 8일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난달 27일 사고 발생부터 이날까지 보여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수준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난 4일에야 범정부 차원의 차관회의를 열고 정부합동조사단 파견을 결정했다. 그러는 사이 현지 주민은 유독가스에 시달렸으며 농작물과 가축 피해는 확산했다.

 산업안전사고가 인근 주민에 대한 피해로 이어진 이번 불산 사태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미숙한 초동대응과 허술한 대처는 당국의 안전관리 수준이 무방비나 다름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불산가스를 누출한 (주)휴브글로벌은 사고 책임을, 탱크 폭발을 막지 못한 한국산업안전공단에는 관리·감독 책임을 각각 물려야 한다. 아울러 늑장 대응으로 주민 고통을 가중한 정부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전국적으로 유독물 관련 시설을 점검하는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유독물 취급업체가 주택가 근처에 위치했다는 점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172곳의 석유화학업체 대부분이, 인천 서구는 140개 유독물 취급업체가 주택가 인근이나 도로변에 있다니 주민들은 말 그대로 화약고를 안고 살아온 셈이다. 관할 행정기관은 관련 업체 현황을 파악한 뒤 일제 점검을 해야 한다.

 산업안전 당국은 유독물 취급업체의 산업안전관리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 주변으로 번지기 쉬운 유독물을 다루는 이들 업체의 산업안전은 해당 근로자의 건강은 물론 지역사회의 안전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정비다. 현재 우리나라 석유화학단지의 재난안전관리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산업안전보건법·소방기본법 등 80개 이상의 법에 따라 환경부·지자체·소방서로 3원화돼 있다. 이렇게 복잡한 행정체계는 제대로 된 안전관리는 물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처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문제인 만큼 산업안전·재난안전관리 통합관리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