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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1TV〈태조왕건〉의 최수종

중앙일보

입력

"암, 그럴 때가 되었소. 배현경, 전의갑 장군은어서 군을 이끌고 대야성으로 떠나도록 하시오." 28일 오후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마련된「태조왕건」세트장.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한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20여명의 주요연기자와 200여명의 엑스트라가 비지땀을 흘리며 촬영중이다.

이날 촬영분은 왕건이 고토회복의 의지를 다지며 평양을 순례하는 장면. 왕건은이곳에서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대야성을 공략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군사를 급파해 신라를 원조한다.

두겹으로 쓴 가발에 노란 관을 머리에 이고, 거기에다가 황금색 곤룡포까지 입은 최수종(39)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고려황제의 위엄있는 모습을 되살려내고있었다. 짙은 갈색 말을 탄 채로 주위를 옹위하고 있는 장수들에게 굵은 목소리로명령을 내리는 모습은 자신감에 넘쳐있고 진지한 눈빛 속에는 삼국통일을 열망하는왕건의 뜨거운 열정이 읽혀진다.

최수종은 이제 궁예의 밑에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차분한 캐릭터의 왕시중에서 벗어나 목표하는 바를 강한의지로 밀고 나가는 진취적인 군주로 변모해있었다.

"자기 배역의 이름을 내건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은 연기자에게 일생동안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영광입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저에게든, 시청자에게든 오로지 왕건으로만 남고 싶은 마음입니다." 촬영 중간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최수종은 비장한표정으로「태조왕건」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최수종은 지난 2년간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촬영장과 집만을 오가며 살아왔다.

일주일 가운데 6일 동안은 촬영하고, 하루 쉬는 날에는 방에 틀어박혀 대본을 연구했다. 다른 드라마, 영화, CF 섭외도 무수히 많이 들어왔지만 전부 거절했더니, 이제는 아무도 출연요청을 하지 않는단다.

토크쇼에 출연해서 재치있는 말솜씨와 온갖 막춤을 선보였던 최수종의 모습도이제는 시청자들에게 잊혀져가고 있다.「태조왕건」이후 토크쇼에는「서세원쇼」에단 한차례, 그것도 극중 왕비들과 함께 잠시 출연해, '무게있는' 모습을 선보였을뿐이다.

"왕건의 이미지를 제가 나서서 무너뜨릴 수는 없잖아요. 부드럽고 다정다감한남자로만 기억되는 제 고정된 이미지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연기생활의 분기점이되는 작품이니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수종은 촬영현장에서 '독사'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촬영시 감독만큼 꼼꼼하게이것저것을 챙기기 때문.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다시한번 가자'고 요청할 때가 많아 스태프들도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최수종이 생각하는 왕건은 어떤 인물일까?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인물입니다. 커다란 목표를 위해 자신의 정도를 지켜나가는 절도있는 '사나이'지요." 한때「태조왕건」의 높은 인기를 주도했던 궁예, 김영철에 대해서는 "궁예를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온 정열을 쏟아부은 존경스러운 선배"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갈 수는 없는 것이라며 궁예 뿐 아니라 다른 연기자들과 제작진의 힘이 온전하게 합쳐졌기 때문이 현재의「태조왕건」이 있을 수있었다"고 강조했다.

최수종은 극 초중반부에 궁예가 부각되면서 왕건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힘을잃었던 것을 아직도 조금은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저는 스스로 분석한 왕건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그려냈다고생각합니다. 남의 말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태조왕건」은 궁예의 죽음 이후에도 40%대 후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여전히순항중이다.

그는 주시청자인 30~40대 성인남성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속의 대사들에 관심을가져보라고 조언했다. 유심히 들어보면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다는것. 자신은 아직도 "쇠덩어리로는 바위를 깰 수 없지만, 낙숫물로는 바위를 쪼갤 수있다"는 대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다시 사극을 하고 싶느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왕건의 이미지는 버리고 다시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야죠.아마 사극은 아닐 겁니다." 한편, 최수종은 바쁜 와중에서도 '2002 월드컵 홍보대사'와 '한국이웃사랑회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사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안동=연합뉴스)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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