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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쟁의 승패는 폭우와 못이 결정했다

중앙일보

입력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전쟁과 반전쟁》에서 "인류의 역사 중에서 단 3주만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단 얘기다. 전쟁은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시험장이며 인간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는 역사의 축소판이다. 인류의 역사를 말할 때 '전쟁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는 누가 이기는가? 강자가 이기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전쟁을 이기기 위해선 수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전략과 전술, 리더십, 무기, 날씨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그 모든 것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을 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전쟁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변수를 정확히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을 평가하는 중요한 시험장이 되기도 한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이렇게 좋은 경험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전쟁과 관련된 책이 엄청나게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보는 각도에서 얼굴이 달라지는 카멜레온과 같다. 최근 나온 《전쟁과 기상》(명진출판),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세종서적) 등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전쟁과 기상》은 전쟁의 승패가 날씨에 달렸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세운 책이다. 베트남 해병대 사령관 크레이튼 아브람즈 장군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책의 핵심을 가장 잘 요약해준다.

"기상은 모든 군사 작전 임무 수행에서 계획의 첫 번째 단계이고 마지막 결정 요소이다."

날씨는 언제나 변화하기 때문에 섣부른 작전을 내릴 수 없으며 예전의 작전을 모방할 수도 없다. 지은이는 전쟁에서 날씨를 이용해 거둔 승리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의 승리'라는 점을, 날씨의 변화는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종군 기자 출신의 에릭 두르슈미트가 지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를 요약하는 한마디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이다.

"전쟁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지도자의 능력."

30년 동안 종군기자 생활을 해 온 지은이는 기자 시절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전쟁에는 단 한가지의 미덕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그 미덕이란 '전쟁에서는 성실하고 쓸모 있는 지도자와 얼치기가 선명하고 빠르게 가려진다'는 것이다.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는 수많은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준다.

전쟁에서 날씨의 변덕, 예기치 않은 영웅적 행위 등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승패의 향방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군사 용어로는 '전환요소(Hinge Factor)'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란 이 '전환요소'의 끊임없는 전환으로 이뤄진 것은 아닐까? 이 '전환요소'가 실제 전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을 잘라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의 벨기에 워털루 남쪽 5km 지점에서 나폴레옹의 7만2천 병력과 웰링턴이 이끌던 동맹군 6만8천 및 블뤼허의 프로이센군 4만5천명이 맞붙은 세기의 전쟁 '워털루 전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나폴레옹의 패배는 잘못된 지휘 때문
1815년 6월 16일 리니에서 프로이센 군을 물리친 프랑스군은 18일 워털루에서 영국군을 공격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프로이센군의 기습 측면 공격 때문에 참패하고 말았다. 나폴레옹 군대 중 2만 5천 명이 사상당하고 9천 명이 포로가 됐다. 이 전투로 인해 나폴레옹의 백일 천하는 끝나게 된다. 그토록 강력하던 나폴레옹군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의 지은이 에릭 두르슈미트는 나폴레옹이 패한 원인을 그루시 장군 탓이라고 말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저지른 최초의 실수는 잘못된 역할 분배 때문이었다. 좌측의 지휘권을 네(Ney)에게 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우측 부대와 예비병력의 지휘권을 그루시에게 넘긴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루시는 이미 은퇴하여 퇴물이 다 된 장군이었다. 당연히 전쟁에 의욕이 없었다.

좌측의 네가 공격을 시작했을 때 3만 3천 명이나 되는 그루시의 부대는 일없이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루시는 정찰대를 보내지도 않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네 장군 역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막강한 기병 군단을 잘 다루는 총명한 장군이었지만 보병 없는 기병이란 고물 없는 찐빵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는 보병 없이 기병만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산탄포가 작렬했다. 산탄포에 기병들이 쓰러지고 말들이 넘어졌다. 네의 기병대는 영국군 방어선을 돌파했다. 네는 결국 영국군을 격퇴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멀리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저런. 네가 너무 성급하게 공격하고 있어. 저것이 큰 화를 초래할 것이야."

영국군의 대포를 장악한 프랑스 기병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병은 시체가 되기 전까지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다. 대포를 장악했지만 그 대포를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포를 쓸 보병이 없었다. 당시 전투에서는 적군의 대포를 못쓰게 만드는 방법으로 못을 이용했다. 다시 뽑을 수 없도록 대가리 없는 못을 점화구에 박아 넣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기병 중에는 못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곧 영국군의 반격이 시작됐다. 기병 전투 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프랑스군이 밀렸다. 네 장군은 나폴레옹에게 보병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네의 무모한 기병 공격에 화가 난 상태였다. "보병을? 어디에서 보병을 데려 온단 말이냐? 지금 너는 내가 보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줄로 아느냐?" 이것이 나폴레옹의 대답이었지만 그는 곧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근위대 6천 명을 네에게 보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영국군은 빼앗겼던 대포를 다시 장악했고 파손되지 않은 대포를 이용해 곧바로 대반격을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무너졌다. 뼈 아픈 오판 하나가 전쟁의 판도를 바꾼 순간이었다. 그루시 장군은 그런 나폴레옹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있어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것은 총사령관의 몫이다. 그 외의 부하들은 단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나폴레옹 자신이 잘못된 명령을 내린 것도 문제였지만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 부하와 무슨 전쟁을 한단 말인가.

나폴레옹의 패배는 갑작스런 폭우 때문
《전쟁과 기상》의 저자 반기성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워털루 전투를 바라본다. 전쟁이 일어나던 바로 그날 6월 18일에 워털루는 전날 내린 폭우로 진흙탕이 돼 있었다. 기병과 포병의 신속한 이동을 중시하는 나폴레옹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영국군을 향해 정면 돌파 작전을 감행한 이유가 바로 날씨탓이었던 것이다. 네 장군이 그토록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것 역시 진흙탕에서는 보병보다 기병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단 워털루 전투 뿐 아니라 나폴레옹의 전쟁에는 날씨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 '예나 전투'에서는 안개의 도움을 받아 프러시아의 15만 군을 물리쳤다. "남이 회의할 때 나는 기동한다"는 나폴레옹의 신념은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서 멋진 작전이었다. 게다가 안개 속에서는 병력의 숫자를 가늠하기도 힘들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프랑스군에게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전투 이후로는 날씨가 더 이상 나폴레옹의 편이 아니었다. 워털루 전투 직전 프러시아 군을 추격하던 프랑스군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 역시 갑자기 쏟아진 폭우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이 날씨를 조금이라도 전쟁에 이용할 줄 알았다면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워털루 전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은 결국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바로 전쟁의 승패는 '필연적인 우연'이라는 것이다. 우연하게 생긴 일이지만 그것은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만약, 프랑스 기병대에게 대포를 못쓰게 만들 못이 있었다면? 만약, 6월 16일 폭우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그 질문 자체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가정 때문이 아니라 전쟁의 과정과 결과 속에서 그것이 필연임을 인정하고 또 다시 그런 필연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히라도 더 이상의 참혹한 전쟁이 생기지 않게. (기분 좋은 인터넷서점-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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