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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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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 채택한 것은 1978년 12월 열린 중앙전체회의에서다. 회의 2개월 전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당시 부총리)이 일본을 방문한다. ‘일본의 선진 경험 배우기’로 일정을 짰다. 방문 중 그가 기자회견을 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민감한 문제였지만 덩의 답은 거침없었다. “우리의 후대(後代)는 분명 지금 우리보다 더 총명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문제를 맡깁시다”라고 했다. 유명한 ‘총명한 후대 해결 방식’은 그렇게 나왔다.

 34년이 흐른 지금, 그 ‘후대’들이 센카쿠에서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섬 부근에 해양감시선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등 일본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많이 참았다. 이번에 끝장내자’는 식이다. 협상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결국 힘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중국은 그동안 빛을 감추면서 뒤로는 실력을 키워왔다. 2010년 경제 규모로 일본을 추월했고 객관적 군사력에서도 일본을 능가한다. 그 힘이 지금 중국인들을 ‘총명한 후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총명한 후대’들이 생각해 봐야 할 게 하나 있으니, 바로 힘의 형성 과정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일본·한국·대만 등 주변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나라 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갖고 중국으로 갔고, 여기에 중국의 노동력이 결합되면서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고기술 부품·반제품은 일본·대만·한국에서, 조립은 중국에서 담당하는 분업 구조다. 중국의 성장은 곧 아시아의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일본은 이 분업구조에서 가장 첨단 분야를 담당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중국 언론은 ‘상황이 악화된다면 일본 경제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짧은 생각이다. 경제 전쟁은 모두에게 실(失)이 되는 ‘마이너스 섬(minus sum)’ 게임일 뿐이다. 그동안 동아시아 성장을 가져온 분업 구조가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아직도 외부로부터 기술·자본이 계속 유입돼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다. 3억5000만 명의 도시 공장 근로자들은 해외 시장에 삶을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는 지금 고성장의 한계를 노출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다. 내부적으로 취약한 중국 경제가 먼저 무너지면서 결국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성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덩샤오핑이었다면? 그는 아마 ‘이쯤 해두고 경제에 매진할 수 있는 평화 분위기 조성에 나서라’고 말했을 것이다.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한 기본 노선은 향후 100년 동안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 패권을 추구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런 덩이 일본 자동차를 뒤엎는 중국 시위대를 봤다면 이렇게 개탄했을 것이다. ‘쯧쯧, 너희들은 총명해지려면 아직도 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