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사령탑 3인 모두 “재벌, 두들겨 팰 대상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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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03면

#장면 1. 4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선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정책 의원총회’가 열렸다. 경제민주화가 그동안 당내 논란의 대상이었던 만큼 정책 방향을 다듬자는 자리였다.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진영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당 수뇌부가 총출동했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당의 분열상만 드러냈다. 당의 경제민주화 사령탑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이대론 일할 수 없다”며 사퇴를 시사했다. 박근혜 후보는 다음 날인 5일 “경제민주화는 확실히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 경제민주화 ‘전쟁’ 중간점검

#장면 2. 지난달 19일 오전 국회도서관 421호 회의실. 국회 경제민주화포럼과 한국경제정책연구회는 공동으로 ‘경제민주화 대토론회’를 열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반민주적 경제가 경제위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경제민주화가 맹목적인 정치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상조(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는 주요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선을 70일가량 앞두고 경제민주화는 뜨거운 이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전선(戰線)은 정치권 곳곳에 펼쳐져 있고 재계는 공세 수위를 높인다. 정치권 내에선 여야가 대결하고, 같은 당내에선 신중론과 강경론이 갈린다. 그럼에도 각자가 말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은 여전히 모호하다. ‘경제민주화는 춤추지만 진전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 대선 후보별로 경제민주화 전쟁을 이끌 사령탑이 모두 정해졌다. 새누리당 김종인 위원장, 민주통합당 이정우(경북대·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수,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장하성(고려대·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교수다.

순환출자 금지와 출총제 부활에 이견
중앙 SUNDAY가 세 후보 캠프에 경제민주화의 세부 정책을 물었다. 공통적인 대답은 “가능한 한 빨리,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간의 발언과 법률안을 바탕으로 보면 ▶골목상권 진출 제한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일감 몰아주기 금지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해 세 후보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에선 여야 간 의견이 갈린다. <표 참조> 공약집 성격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안철수 후보 측은 ▶순환출자는 유예 기간을 두되 단호하게 해소한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은 실효성에 의문이 있으므로 대안이 있는지 검토한다 ▶금산분리는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후보에 대해 “기존 순환출자를 용인하겠다는 건 재벌의 불합리한 경제력 집중을 방조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상반된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후보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발표되지 않아 평가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 측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선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중요한 건 실천 의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미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대선 전이라도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은 국회에서 합의로 처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장하성 교수는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넣기는 했지만 실천 의지를 갖고 현실에서 부닥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다른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의지가 강하고 이미 준비된 것도 많아 세부 정책은 대선 공약으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각 캠프의 경제민주화 정책 사령탑들은 “재벌을 두들겨 패는 대상으로 봐선 안 된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장하성 교수는 “난 재벌 저승사자가 아니라 동반자다”고 했고, 김종인 위원장은 “재벌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이정우 교수는 “재벌이 잘못한 것은 개혁하고 잘하는 것은 북돋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요술지팡이 아니다”
하지만 재계는 불안 속에서 정치권 공세에 대한 공격적 방어에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경제민주화 제대로 알기’ 연속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학문적 관점에서의 경제민주화 제대로 알기’(11일),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의 경제민주화 제대로 알기’(17일)가 주제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중심이다. 앞서 한경연은 ‘경제민주화 정책 토론회’를 연속 개최했다.

전경련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놓고 세밀한 분석에도 나섰다. 전경련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은 “대기업의 지배 구조를 흔들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국민에게 순간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순 있겠지만 나라 경제엔 도움이 안 된다. 경영권이 흔들리면 일자리 늘리기도 힘들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간접적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의 문제점 지적에 나섰다. 이달 초 대·중소기업 350개를 대상으로 한 기업정책 인식조사를 통해 ‘대기업 규제가 취지는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도 아니다’고 결론 냈다.

이런 와중에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주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의미가 분명치 않고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한경연 사회통합센터 현진권 소장은 “경제와 민주화는 각각 확실한 개념이지만 붙어서 한 용어가 됐을 때 무슨 의미인지 불분명하다. 대선용 정치용어”라고 말했다. 앞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경제민주화의 뜻이 명확하지 않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4일 의총에서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정확히 정립하고 국민 앞에 잘 말씀드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란 안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보자기’ 같다고 표현했다.

강원대 민경국(경제학)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순환출자금지에서 소상공인 지원 강화, 공평 과세까지 30개가 넘는 정책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며 “너무 범위가 넓어 이젠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우리 사회 경제문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요술 지팡이로 둔갑해 시민들은 기대심이 높아지고 대기업은 불안에 떤다. 경제민주화란 용어보다 세분화된 정책을 마련해 국민에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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