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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싸이의 성공은 즐긴다는 기분으로 어깨에서 힘 뺐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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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힘 빼세요, 힘.” 골프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듣는 잔소리 중 하나가 아마 이 말일 것이다. 힘 안 주고 어떻게 공을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클럽을 잡은 초보자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스윙의 원리를 모르니 당연하다. 제대로 한번 날려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영락없이 뒤땅 아니면 헛스윙이다. 손목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니 스윙을 하는 게 아니라 도끼로 장작 패는 모양새가 된다. “힘 빼는 데만 3년 걸린다”는 속설이 그냥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골프채를 놓은 지 10년이 넘었다. “왜 안 치느냐”고 물으면 “평생 칠 것 한꺼번에 다 쳤기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힘 빼고 칠 자신이 없어서다. 집에서 나올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마음 비우고 치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필드에만 나가면 ‘내 마음 나도 몰라’가 된다. 그러니 공이 맞을 리 없다. 못 치는 것도 억울한데 욕심 많고 머리 나쁘다는 소리까지 들을 게 뭐 있느냐 싶어 어느 날 골프를 딱 끊었다. “그 덕분에 절약한 돈과 시간이 얼만데…”라는 말로 지금은 위안을 삼고 있다.

 지난주 대만에 갔을 때 백하도방(白荷陶坊)이란 곳에 들렀다. 대만 최대의 연꽃 생산지인 바이허(白河)에 있는 도예 공방이다. 연꽃을 소재로 한 수묵담채화의 대가인 임문악(林文嶽) 선생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각종 도예품을 구워내는 곳이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 앞에서 대가는 손수 실력 발휘에 나섰다. 큰 화선지 위에 연꽃을 그렸다. 유연한 붓놀림을 갑자기 멈춘 그는 “잘 그리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잘 안 된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평생을 붓과 씨름해온 대가도 욕심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작심하고 덤비면 오히려 글이 잘 안 나온다. 마음먹고 쓴 글보다 대충 쓴다는 기분으로 어깨에서 힘을 빼고 쓴 글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황당한’ 경우가 종종 있다. 붓을 들기 전에 생각은 많이 하되 일단 붓을 들면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게 좋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다. 욕심이 글을 망친다.

 싸이의 성공도 그런 것 아닐까. 처음부터 세계 1위를 목표로 정해놓고 죽기살기로 덤빈 것이 아니라 그냥 즐긴다는 기분으로 어깨에서 힘을 뺐기 때문에 그런 ‘수퍼 대박’을 터뜨린 것 아닐까. 주변에 보면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뭔가 일을 내보겠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덤비는 사람들 말이다. 대권주자들도 그렇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이번에 안 되면 안 된다고 지나치게 아등바등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어깨에서 힘을 빼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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