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켄 특집] (1) 유격수의 새시대를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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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프로 세계에 발을 내디뎠을 때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1978년 드래프트된 뒤, 나는 포지션을 결정해야 했다. 스카우트 딕 보위는 나에게 유격수를 맡으라고 했고, 스카우팅 디렉터였던 탐 조르다노는 내가 투수로 더 유망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자, 나는 매일 플레이하고 싶은 생각에 유격수를 선택했다."

그의 회상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리고 루키 리그의 블루필드 팀으로 보내진 뒤, 나는 60경기에서 무려 32개의 실책을 범했다. 나는 후회했고, 투수가 되는 것이 훨씬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고교 졸업반 시절 0.70의 방어율에 7승 2패를 기록한 거물급 유망주 투수였던 선수가 프로세계에 뛰어들어 겁없이 내야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을 맡았고, 그 결과 처절한 실패를 맛본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는 과연 매일 경기장에 나왔고, 매일 플레이하였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코 깨지지 않으리라던 대기록을 깨뜨렸다. 그것은 바로 이 결정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매일 플레이하는 선수가 되겠다."

2632경기 연속 출장. 과연 앞으로 이 기록에 도전할 선수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16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심각한 부상도 당하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할 수 있으며, 누가 경기에 자신의 100%를 바치는 열정을 그 오랜 시간 동안 지킬 것인가? 그러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 팬들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물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 기록도 영원히 안전하지는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기록이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칼 립켄 주니어보다 더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더 열정적인 선수가 나타난 다음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수의 출현을 기대할 만큼 인내심이 뛰어난 팬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기록에 가려져, 때때로 립켄이 선수로서 세운 또다른 업적들이 간과되기도 한다. 그는 400홈런과 3000안타를 모두 돌파한 단 7명의 선수 중 하나이며,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칼 야스트렘스키에 이어 두번째로 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주로 유격수로 활약한 인물 중 3000안타 클럽 멤버가 된 인물은 그와 호너스 왜그너, 로빈 욘트뿐이다. 그는 유격수로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쳤으며(어니 뱅크스는 512홈런을 기록하였으나, 유격수로 출장한 경기에서 친 홈런 수는 277개이다), 2000시즌을 마친 시점에서 역대 홈런 랭킹 28위에 올랐다.

그는 1982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이 되며 스타로 떠올랐고, 1983년과 1991년에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다. 유격수로서 MVP를 두 번이나 차지한 선수는 역사를 통틀어 립켄과 뱅크스뿐이다(욘트는 두번째로 MVP가 된 1989년에는 중견수로 활약하였다). 또한 그는 1991년과 1992년에는 골든 글러버가 되어, 자신이 유격수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수비력에서도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다.

역사가들은 그가 왜그너, 뱅크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중 하나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조 크로닌, 조 슈얼, 루크 애플링, 아지 스미스 등 수많은 명선수들이 이 포지션을 거쳐갔지만 립켄이 역대 유격수 중 네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라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야구의 역사에서 립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유격수라는 포지션에 1980년대 이후 일어난 변화의 물결을 주도한 인물이 립켄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유격수에 대한 고정관념이 도전에 직면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체구가 작고 민첩한 동작으로 타구를 처리할 수 있으며 타력, 특히 장타력은 보잘것없는 선수'들이 차지하는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였다.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된 뒤 1970년대까지 등장한 유격수 중, 장타력을 인정받은 인물은 크로닌과 뱅크스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키(6피트 4인치)가 큰 유격수이며 폭발적인 장타력를 지닌 슬러거인 립켄이 등장한 뒤, 그처럼 팀의 중심 타선에서 파워를 과시하는 유격수들이 크게 늘어났다. 립켄은 베이브 루스와 마찬가지로, 야구라는 스포츠의 경기 양상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선수였던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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