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노래가 좋아 뭉친 그녀들, 일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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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합창이 좋다. ‘서초바우뫼합창단’이 26년째 활동을 이어온 이유다. 회원 중 서초구민이 가장 많지만 강남구·송파구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연령층도 20대에서 60대까지다. 노래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지난달 대통령상 전국합창대회에서 일을 냈다. 대상을 거머쥔 것이다.

“해야.” “해야.” “해야 해야~”

지난달 24일 오전 11시 서초구민회관 지하 연습실. 박정선 작곡의 ‘해야 해야’가 울려 퍼진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나뉜 여성 20여 명이 노기환(48)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노래를 만들어 나간다.

갑자기 노래가 중단된다. “아직 터지지 말아야 해요.” “더 세게 나왔다 빠져야 합니다.” 지휘자의 지적이 이어지고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여성들은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연습에 집중했다. 이날 10시에 시작한 서초바우뫼합창단 연습은 쉴새없이 이어져 낮 12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오랜만의 연습이었다. 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 단원 모두 연습을 접고 십여 일 동안 여유를 즐긴 뒤였다.

서초바우뫼합창단은 지난달 10~12일 대전에서 열린 ‘제16회 대통령상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합창단은 ‘제16회 대통령상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2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영화 필름처럼 가슴에서 돌아가고 있다. 대회는 대전에서 지난달 10~12일 열려 23개 팀이 참여했다.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지휘자인 노씨가 ‘해야 해야’ ‘아베마리아’ ‘엄마야 누나야’ ‘물레타령’을 대회곡으로 정했다. 매주 월·수요일이면 단원들이 모여 2시간 넘게 연습했다. 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엔 연습시간을 1시간 늘렸고 모이는 날도 하루 늘렸다.

노래 연습뿐 아니라 대회 의상도 직접 만들었다. 대회곡 중 ‘물레타령’이 주력곡이었다. 노래에 어울리는 의상이 필요했다. 광목으로 한복을 만들어 입자는 의견이 나왔다. 임정숙(53) 총무는 한복을 주문하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갔다. 한복에 물을 들일 염료도 일일이 찾아다녔다. 준비된 한복과 염료를 단원 4명이 나눠 가져가 집에서 염색했다. 집 욕실, 싱크대가 작업장이었다. 염색한 한복을 수십 번 헹궜다. 말리고 나선 잘 접어 2시간 내내 밟았다. 오로지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 이번 대회 수상의 밑바탕이 됐다.

합창단은 1986년 만들어졌다. 양재동 서울양재초등학교 육성회 학부모들이 단원이었다. 초등학교 앞 길 이름이 ‘바우뫼로’여서 합창단 이름을 여기서 땄다. 학교 음악실이 연습공간이었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였기 때문에 당시 회원들은 30대가 대부분이었다. 회원도 40명이 넘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있던 단원들이 이사를 가고 신입 단원이 들어왔다. 서초구민회관이 건립되면서 연습공간도 옮겼다. 창단 회원들도 이젠 중년 부인이 됐다. 현재 총 회원은 29명. 20~60대까지 있지만 50대가 주축이다. 세월은 그들을 변하게 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만은 식히지 못했다. 합창단은 창단 이후 꾸준히 지역 행사에서 공연하고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성회(53)씨는 딸 조유미(28)씨와 함께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다. 그는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집에만 있으니 무기력했다. 합창단에서 반주를 맡고 있는 황은영(36) 피아니스트가 이곳을 추천했다. 딸도 “함께 해보자”며 힘을 줬다. 최씨는 “단원들이 밝고 건강하다”며 “합창단에만 오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했다. 조씨는 “어머니께서 노래를 좋아하시는데 자녀 뒷바라지하시느라 즐길 기회가 없으셨다”며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고 함께 하니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듯 하다”고 전했다.

박선자(60)씨는 송파구립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만 55세가 정년이기 때문에 나와야 했다. 30대 초반부터 시작한 합창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4년 전 서초바우뫼합창단의 문을 두드렸다. 박씨는 “우리 합창단은 합창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다양한 연령층과 여러 지역에서 모였다”며 “합창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자부했다.

고순진 단장은 합창단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창단 1년 뒤부터 단장을 맡았다. 예전엔 서초구에서 지원도 받았지만 구립합창단이 생긴 후부턴 끊겼다. 전국대회에 나갈 때, 행사를 치를 때 비용이 필요했다. 회원들이 월 5만원을 냈고 일부 회원이 특별 회비를 더 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럴 때마다 고 단장은 사비를 털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합창이 좋아 해온 일”이라며 “많은 사람이 우리 합창단에 찾아오고 지역 기업도 우리 활동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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