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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건설 1200여 하도급업체 줄도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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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추석에 월급 줄 돈도 모자라 긴급 대출로 겨우 급한 불만 껐습니다.” 극동건설이 충남 연기군 세종시 L2·L3블록에서 신축 중인 웅진스타클래스(610가구) 공사에 참여 중인 A엔지니어링 김모 관리이사의 말이다. 이 회사는 극동건설이 갑자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밀린 공사대금 10억여원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당장 추석을 앞두고 직원 60여 명의 이달치 월급이 모자라 저축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 김 이사는 28일 “터파기·골조공사비 10억원을 지난달 말 받았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뤘다”며 “자기네만 살겠다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우리 같은 하도급업체는 어떻게 살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당장 극동건설 하도급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건설경기가 가라앉고 추석까지 앞둔 상황에서 공사비나 물품비, 용역비 같은 상거래채권을 제때 못 받으면 운영자금 부족으로 줄도산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금융권은 물론 일반 상거래 채무까지 모두 동결돼 하도급업체는 극동건설의 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전까지 상거래채권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극동건설이 세종시나 인천시 등에서 운영 중인 아파트 신축이나 토목공사 현장은 국내 66곳, 해외 9곳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6곳 공사현장에 1200여 개의 하도급업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이 극동건설에서 받아야 할 돈만 2953억여원에 달한다. 경기 파주의 극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에 자재를 공급한 B업체 심모 대표는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우리뿐 아니라 전기·토목·소방·창호 등 20여 개 하청업체가 공사대금 수백억원을 모두 못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래하는 은행이 이 얘기를 듣게 되면 자금줄을 조일까 봐 쉬쉬하고 있다”며 “한두 달은 어떻게 버티겠지만 그 이상 되면 자금난에 문닫는 업체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28일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기업회생절차 신청 과정에서 웅진 계열의 부당행위가 있었는지 일제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기업회생절차 신청 직전 계열사 차입금을 만기 전 서둘러 갚고 대주주 등 특수관계인이 주식을 판 행위 등을 조사하라는 것이다. 권 원장은 또 웅진계열 하도급업체 등이 자금난을 겪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고 은행 등 금융권에 요청했다. 웅진그룹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은 하도급업체의 채무를 유예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업체들에 자금을 신속 지원키로 했다.

 한편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경영권을 고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6년 통합도산법이 도입되면서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라는 게 생겨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경영진이 그대로 경영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2006년 72개에서 지난해 712개로 5년 새 10배 가까이 급증한 배경이다. 윤 회장은 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당일 홀딩스의 대표이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윤 회장이 홀딩스의 경영권을 직접 쥐고 건설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대표이사를 교체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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