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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정종욱 J-CHINA FORUM 회장 (동아대 석좌교수)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당대회가 곧 열린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당 대회는 대부분10월에 열렸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한 달 정도 남았다. 중앙일보가 후원하는 국내 최고 중국 전문가 모임인 J-CHINA FORUM이 18차 전당대회 이후의 중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이 국제회의를 이 시점에서 개최하는 것은 시진핑이 이끌 중국의 앞날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이웃하고 있는 한국에게 중국의 미래는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한중 관계는 물론 아직 탈냉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 질서의 향방이 이번 중국의 지도층 교체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서는 두 차례의 대폭적 지도층 교체가 있었다. 1992년 덩샤오핑이 장쩌민을 핵심으로 하는 제3세대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이 첫 번째이고 10년 뒤 2002년 장쩌민의 뒤를 이어 후진타오 총서기를 비롯한 제4세대 지도층이 권력을 승계한 게 두 번째였다. 그 때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금년에는 18차 당대회를 통해 후진타오가 퇴임하고 제5세대 지도층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경우도 경제성장을 위해 정치안정이 필수적이며 정치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교체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덩샤오핑이 설계한 10년 주기의 지도층 교체가 세 번째로 단행되는 통상적 행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5세대로의 권력교체는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통상의 범주를 휠씬 뛰어넘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무엇보다도 지도층 교체의 큰 폭과 새 지도층에게 주어진 책임의 중요성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중 7명이 교체 대상이다. 정치국의 경우에는 25명 중에서 3분의 2 정도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될 전망이다. 중앙위원회도 70 퍼센트 정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 개방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이다. 그뿐 아니다. 이번에 선출되는 이들 5세대 지도자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모든 중국인들이 여유 있는 생활을 구가하는 전면적 소강사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소강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면 개혁 개방의 마지막 목표인 대동사회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중국의 오랜 숙원인 부국강병의 꿈을 달성하느냐 못하느냐가 이들 5세대 지도층의 어깨에 달렸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18차 전당대회가 중국 개혁 개방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라는 주장도 이런 근거 때문이다.

둘째, 18대 전당대회를 계기로 중국 권부의 정상에 전면 등장할 5세대 지도자들의 성향이 이전 세대의 지도자들과 구별된다는 점이다. 5세대 지도자들은 출생, 교육, 경력 등 여러 면에서 과거 세대와는 매우 다르다. 49년 건국 이후에 출생한 이들은 대부분 건국 이전의 혁명투쟁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비혁명세대이다. 대신 대약진과 인민공사 운동과 문화혁명을 통해 어린 나이에 배고픔과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경험했다. 특히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시골 오지로 보내져 수 년간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70년 대 후반 대학의 문이 열리자 가파른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 80년 대 초반에 학부를 마치고 당의 중견 간부로서 개혁 개방의 선두에 나섰다. 문화혁명의 고통과 공백을 경험한 “잃어버린 세대”이자 그 고통과 공백을 잘 극복하고 화려한 개혁 개방 시대를 열어간 근대화의 주역들이다.

전공도 다르다. 5세대에는 인문 사회계열 전공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칭화대에서 수리공학을 전공한 후진타오에 비해 그의 뒤를 이을 시진핑은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자바오가 베이징 지질대학을 졸업했지만 그의 후임 리커창은 베이징 대학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래서 이들은 초고속 성장이 초래한 사회 정치적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고 있으며 이들 정치 사회 문제들의 해결 없이는 경제의 지속성장도 어렵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전공이 인문 사회계열이라 해서 5세대가 중국이 당면한 정치 사회적 난제들을 더 잘 해결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문제를 정치 사회의 총체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해법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3, 4세대의 공학도들과는 매우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혁명의 극심한 혼란을 경험했던 이들은 무엇보다도 정치안정을 중시하며 지식청년으로 농촌과 시골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통해 낙후지역의 어려운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으며 부국강병의 민족주의적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정책이 성공해야 하며 이념을 초월하여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류 협력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을 소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달라진 지도자 선출 방식이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에서의 지도자 선출은 하향식이었지만 5세대부터는 상향식의 측면이 상당히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후계자로 지명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후진타오의 경우 지명을 받은 후 정상에 오를 때까지 10년 이상 2인자의 자리를 지켰지만 이미 후계자로 낙점 받은 그로서는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성형의 후계자였다. 정상을 향한 경쟁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지명은 후진타오까지였다. 장쩌민이나 후진타오가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결정권은 없다.

정치국과 상위 차원의 지도자 선발 과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여론을 포함한 각종 자료를 참고해서 당 조직부가 후보자의 예비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최고위 지도자들이 협의해서 최종 리스트를 만들면 이를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투표를 통해 공식 확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조직부가 후보 명단을 만드는 단계와 당 지도부의 낙점 과정에서 각 파벌 간의 치열한 막후 교섭이 있겠지만 후보자들의 능력에 대한 검증과 여론의 반응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제한적이긴 하지만 후보 선정과정에서 경쟁 요소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중앙위원들의 투표가 순수한 가부 투표가 아니라 일정 비율의 후보자들을 낙선시키는 차액선거라는 사실도 이런 경쟁의 측면을 부추긴다. 또한 2007년 시진핑과 리커창이 후진타오의 뒤를 이를 당 총서기 자리를 놓고 경합했을 때 중앙당교에 모여있던 300 여명의 정부장 급 고위 간부들이 모의 인기 투표를 했고 그 결과가 두 사람의 정치적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 역시 지도자 선발에서 경쟁적 요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보도가 사실이던 아니던 간에 중요한 것은 이제 정치국이나 상위와 같은 영도의 자리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당의 최고 지도자들은 물론 여론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위 당직자들을 상대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최고 지도자에게 잘 보이면 됐지만 이제는 잘 보여야 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아졌고 평가 기준에서도 인간관계나 개인적 충성심 보다는 능력과 대중적 인기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 사건도 어떻게 보면 이런 지도자 선출의 새로운 방식 때문에 생긴 돌출 행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18차 당대회는 하향식 지명이 아닌 상향식 경쟁을 통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새로운 방식이 어떻게 정착될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18대의 결과에 따라서 향후 중국의 엘리트 정치는 혼란이나 파행의 길을 갈 수도 있고 보다 안정적인 정치제도화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넷째, 당 원로들의 역할이다. 중국은 아직도 퇴임한 당의 최고 지도자들이 국정운영, 특히 지도자 선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원로정치의 나라이다. 절대적 권력자였던 마오쩌둥은 죽을 때까지 원로의 역할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공직에서 퇴임한 후에도 막후에서 사실상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다. 원로의 역할이 주목을 받은 것은 장쩌민 때부터였다. 그는 2002년부터 3년에 걸쳐 당과 국가와 군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순차적으로 후진타오에게 물려주었지만 퇴임 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상하이 당 서기 때부터 15년 이상에 걸친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많은 측근들을 키워냈고 자신의 추종자들이 당과 정부의 요직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이른바 상해방이나 태자당이 대부분 장쩌민의 사람인 것도 이 때문이다. 후진타오 역시 재임 기간 중 자신의 권력기반인 공청단 계열 인물들이 정치국과 상위를 비롯한 당?정?군의 요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금까지는 태자당?상해방과 공청단 간에는 균형과 견제의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져 왔다. 상무위와 정치국과 서기처에서 두 세력이 비슷한 지분을 차지해온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이번 5세대 지도자의 선출 과정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당의 원로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리고 두 파벌 간의 안배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중국 정치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관심 대상이다. 원로 정치가 온존하는 한 정치 제도화나 정치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정치국 상위의 규모와 역할 문제이다. 현재의 상위는 9명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상위 9명은 대등한 지위를 갖고 각자 고유한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상위들간에 서열이 있지만 이는 권력의 위계적 서열이라기 보다 의전적 측면이 강하다. 서열이 높다고 해서 다른 상위의 업무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상위의 역할과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9명이 효율적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각자가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순수한 집단지도체제라기 보다 복수의 총통제와 같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상무위원의 숫자를 7명으로 줄이고 분장업무 간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상위위원들이 각자 업무 영역을 떠나 국정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고 결정하게 하자는 안도 나왔다.

이 안은 특히 보시라이 사건 이후 정법위원회의 권한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면서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식서열은 9위이지만 공안조직과 사법부를 지휘하면서 치안과 안전과 법 집행 업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정법위 서기직을 정치국에 넘기고 정법위 업무 일부를 독립시켜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게 이 구상의 핵심이다. 상위의 집단지도적 성격을 강화는 동시에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함으로써 정치개혁의 효과도 거두겠다는 일조이석(一鳥二石)의 취지라 할 수 있다. 특히 정법위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소관으로 조정되면 법치주의를 향한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는 더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통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상과 선정 담당 상위의 직책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권력 순위 5위인 리창춘(李長春)이 맡고 있는 이 자리는 정치개혁의 핵심적 대상이다. 만약 정법위 서기 자리와 함께 사상 선전 담당 상위 자리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 진다면 이는 정치개혁을 향한 중대한 진전이라 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18기 정치국 상위가 몇 명이 될지, 현행의 9명이 지속될지 아니면 7명으로 축소될지 그리고 상위 내부의 업무 관할과 상위의 역할과 성격이 어떻게 조정될지는 앞으로의 중국의 법치주의를 향한 진전과 정치발전을 전망함에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여섯째, 최고 지도자의 임기와 국정 운용의 틀이다. 상무위원을 포함한 정치국원의 정년은 72세이다. 이 규정에 따라서 이번 18차 대회에서 정치국이나 상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67세가 넘지 않아야 한다. 67세까지는 유임이나 승진이 가능하지만 68세 이상은 물러나야 하는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에 따라 45년 생인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당서기가 상위에 진입하면 그는 18기 지도부의 최고령자가 된다. 류정성 이외에도 18기 상위는 상당수가 60대 후반의 인물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장더장(張德江) 현 충칭시 당 서기도 46년 생으로 올해 66세이다. 48년 생인 왕치산(王岐山)까지 합치면 60대가 3명이나 된다. 이들은 5년 후에는 칠상팔하의 규정 때문에 재선이 어렵다. 이에 비해 당 총서기와 국무원 총리에 오를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53년 생)과 리커창(55년 생), 그리고 50년 생 리원차오(李源潮)와 상위 진출이 유력한 55년 생 왕양(汪洋) 광동성 당서기는 모두 50대 후반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최고 영도의 자리를 보존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지도부 내에 5년 임기와 10년 임기의 두 그룹이 공존하다가 순차적으로 퇴진함으로써 일시 퇴진으로 인해 생기는 정치 공백을 막고 정책의 지속성과 평화적 정권교체를 보장하는데 매우 긍정적 역할을 해왔다. 이런 전통이 계속 지켜질지도 18대에 이목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국정운용의 틀과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점은 집단지도체제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태자당-상해방과 공청단의 두 파벌이 새로운 18기 지도부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정책을 조율하느냐는 점이다. 두 파벌은 경력과 국정 운용의 철학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태자당과 상해방은 경제성장을 우선시 하는데 비해 공청단 출신의 지도자들은 분배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가 연안지역의 발전을 중시하는 데 비해 후자는 낙후된 내륙의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두 파벌 지도자들의 경력에서도 잘 나타난다. 시진핑은 푸젠(福建)성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고 그 후 저장(浙江)성으로 갔다가 상하이 당서기로 옮겨갔다. 모두 개혁 개방의 첨단 지역들이다. 반대로 리커창은 낙후된 허난(河南)성에 오래 근무하다가 랴오닝(遼寧)성 서기로 갔고 거기서 부총리로 발탁되었다. 모두 개혁 개방의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이다. 정책성향도 다르다. 태자당인 왕치산은 하버드에서 수학한 국제 금융 전문가로서 중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공청단의 6세대 선두주자인 후춘화는 티베트에서 근 20년 동안 근무하면서 소수민족 문제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민감한가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시진핑이 분배나 격차 문제를 소홀히 한다거나 리커창이 경제성장정책을 반대할 것이라는 주장은 아니지만 두 파벌 간의 정책적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타협함에 있어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이 5세대 지도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진핑이 이끌어 나갈 중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보다 장기적 시각에서의 관심은 5세대 지도자들이 정치개혁을 얼마나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덩샤오핑의 2세대와 장쩌민의 3세대가 경제를 개혁했고 후진타오의 4세대가 사회를 개혁했다면 시진핑의 5세대는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경제개혁을 위해 덩샤오핑이 선부론을 제창했고 장쩌민이 3개 대표론을 내놓았다면 후진타오가 제시한 과학발전관은 고도성장의 사회적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시진핑의 5세대가 풀어야 할 역사적 도전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향한 본격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다. 소극적 당내 민주주의나 제한적인 법치주의를 넘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다양한 정치 참여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장은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훼손하는 어떤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산당과 다른 정치집단들 간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새로운 정치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질서가 정착되지 않는 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의 미래는 한계에 부디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 된다 해도 국제사회와 지역에 대한 중국의 기여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또 국제사회나 이웃 국가들의 중국적 가치에 대한 평가도 미온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진핑과 5세대 지도자들이 중국을 통치할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정치개혁의 기초가 내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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