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의 엄마 ‘스위스 할머니’의 사랑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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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진주씨가 음성군 집에서 후원 아동의 사진을 들고 웃고 있다. [사진 월드비전]

평생을 가난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푸른 눈의 할머니 인진주(67·마가렛 닝게토)씨. 고향 스위스에서 휴가차 방문한 한국, 이곳에서 만난 고아들을 도우려 아예 한국으로 건너온 뒤 이젠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있는 그가 25일 보건복지부 선정 ‘행복 나눔인’에 뽑혔다.

 스위스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인씨는 한국인 간호사들을 만난 인연으로 1975년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엔 버림받고 굶주린 아이들이 많았다. 스위스에 돌아가서도 검은 머리의 고아들이 눈에 밟혔다. 멀리서나마 후원을 시작했다.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형편에 거지들에게 밥을 나눠주던 정 많은 한국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수차례 한국을 찾아온 인씨는 85년 아예 한국에 정착했다. 광주·울산·용인·군산 등의 보육원에서 버려지고 아픈 아이들을 돌봤다. 본명 마가렛이 라틴어로는 ‘진주’라는 뜻을 살려 한국 이름도 지었다.

 93년부터는 한국 밖으로 눈을 돌렸다. 구호단체 ‘월드비전’ 활동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오래 전 한국에서 본 굶주린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선진국이 된 한국엔 이제 배곯는 아이도, 오염된 물 때문에 아프거나 죽는 아이도 없어요. 하지만 몽골엔 학교도 못가고 일을 해야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왔어요.”

 19년 전 몽골 아이 3명으로 시작한 해외아동 후원은 현재 몽골·인도·스리랑카·우간다·모잠비크 등 11개국 30명으로 늘었다. 스위스에서 받는 연금을 쪼개 아이 1명 당 매달 3만원씩 90만원을 후원한다. 인씨는 “후원자의 도움이 없으면 미래가 없는 아이들에게 (후원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씨는 충북 음성군에서 버려진 유기견 열한 마리를 돌보며 산다. 30명의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에 답장을 쓰고, 그들의 생일선물을 챙겨주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인씨는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다문화 가정 친구가 있으면 괴롭히지 말고 친구가 되어주세요. 또 더 힘들게 사는 해외의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면 좋겠어요.”

 이날 보건복지부는 인씨를 비롯한 29명을 행복 나눔인으로 선정했다.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우간다·인도네시아 등 어린이를 후원하는 탤런트 이광기씨, 99년부터 매년 한두 차례씩 제3세계를 찾아 언청이·화상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 백무현씨, 동남아 각국에 초등학교를 지어준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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