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작가 신작 '소설법' 들고 한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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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상륭(64)이란 인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절간의 문을 여는 일이다. 옷매무새 매만지고 새색시 마냥 머리 조아리고 찾아들어야 한다. 그 누구도 문학이 이리 어려울 수 있는지, 아니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지 따져물을 수 없다. 반드시 "내 잡설(雜說.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컫는 말)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데 왜 이해를 못하느냐"고 되물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화는 거기서 끝나기 일쑤다. 질타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를 만나야 한다면 '박상륭식 대화법'은 숙지사항이다.

신작 소설집 '소설법'(현대문학) 출간차 캐나다에서 작가가 귀국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켠 그의 아파트에 들어섰다(작가는 일년에 한번쯤 들어온다. 그때를 위해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두었다). 거실 복판 앉은뱅이 책상에 고량주 두 병 나란하다. 고량주…. 1969년 "이땅에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돌연 이민을 결행하기 전, 그는 이 중국술만 찾았다. 그맘 때 그는 고량주를 "불 냄새 나는 소주"라고 부른 적 있다. 출국을 코 앞에 둔 어느밤 절친한 벗 고 김현(평론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무정'이후 최고의 소설이라고 칭했다)과 고량주 18병을 마셨다는 일화는 여태 회자된다. 그밤 그는 서울 청진동 골목에서 세상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붓고 한바탕 울부짖고 마구마구 흙을 파먹었다.

"여전히 고량주를 즐기시네요" 인사를 건넸더니, "노인네가 구비해야 할 모든 증상을 갖췄습니다. 당뇨.고혈압 따위죠. 하여 술을 끊었습니다. 술을 앓아본 기억이 십년은 됐을 겝니다. 이건 접대용입니다요"라고 대꾸한다.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몰랐다. 문장 한두개가 쪽 하나를 다 메우고, (몸+마음)과 같은 정체불명의 어휘가 등장하고, 동서고금의 숱한 종교와 신화가 인용되고, 각주는 여간한 학술논문보다 길고 복잡하다. 잠자코 책만 만지작대자 작가가 먼저 말을 꺼낸다.

'이번에 처음 내놓는 게 세편이고, 나머지는 계간지에 연재했던 것과 강연록이다. 여전히 죽음을 연구했고, 죽음을 연구하는 것은 생명의 연구이며,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다. 인도 불교의 종파 자이나교는 내 생각과 가장 맞는 종교다. 환경문제는 사람과 지구의 문제이기 때문에 'Humanet'(Human+planet)란 말을 고안했다.' 묵묵히 받아적은 건 대체로 이랬다.

술병 하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물었다. 왜 이리 어렵습니까.

"나보고 천재라고 부르지만, 난 노력파요. 원고지 3000매를 열번 덧쓰는 게 내 글쓰기 방법이오. 하나의 장편소설을 열번 다시 쓰는 것이오. 그러다 보면 무의식이 깨어납니다. 나는 사라지고 무의식이 나타나 글을 쓰는 것이오. 김현이가 날 이해했다지만, 그렇지 않소. 김현이도 모든 걸 알아내진 못했소. 혈기방장했던 옛날도 쇠약해진 지금도 외로운 건 변하지 않았소."

나머지 한병도 비워졌다. 휘청대며 자리를 일어서는 데 벽에 걸린 흑백 사진이 눈에 띈다. 굳은 표정의 박태순.이문구.박상륭.김수명.김현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서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싱싱했다. 묻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김포공항, 그가 고국을 뜨는 날이었다.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먼저 간 문구와 현이가 부럽습니다".

글=손민호,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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