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가 뜬다] 3. 즐겁게 사는 것이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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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정(情)' 광고로 유명한 광고업계의 기린아, 이용찬(47) 리앤디디비(Lee&DDB) 대표. 그의 이력서 직업란에는 광고인 말고도 성악가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다닌다.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음악회를 열 정도로 음악계에서도 결코 무시 못할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다음달 13일 열릴 제3회 명사 음악회 준비에 한창인 음악동호회 데뮤즈(Demuse) 회원들. 음악으로 즐겁게 일하고 자선 사업도 펼치는 웰니스족들이다. 왼쪽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김형수 교수, 서울치과병원 민병진 이사장, 금호미술관 박강자 관장, 디자이너 조이연씨, 대교베텔스만코리아 김영관 대표, 리앤디디비 이용찬 대표.

그가 성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 어느 날 지인들과 식당에 갔더란다. 당시만 해도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종업원을 불렀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때 성악과 교수 한 분이 "내가 불러보겠다"며 나섰다. 큰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는데 낭랑한 테너 음성으로 "아주머니~" 부르자 단번에 종업원이 달려왔단다. 이 대표는 그때부터 성악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먹는다.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라기보다 호소력과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갖고 싶어서였다.

노래를 배우다 보니 매우 재밌어 아예 성악가로 나섰다. 게다가 성악을 하고 나서부터 이 대표는 광고 수주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에서 한 번도 실패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별명이 '동방불패'다. 승률이 높은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광고주에게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에 기인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믿음이다. 그는 본사 건물 꼭대기층 전체를 사원과 외부 손님들을 위한 커피숍으로 꾸몄다. 그랜드 피아노와 노래방 기기까지 갖췄다. 직원들과 함께 즉흥 장기자랑 대회를 열기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더욱 즐거워지고 그러다 보면 창의적 사고가 활성화돼 시장을 뒤집고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발상이 생겨날 수 있겠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첫인상을 바탕으로 로고 송을 즉석에서 작사.작곡해 선물한다. 다른 뜻이 있다기보다는 흥에 겨워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짤막한 노래지만 고객들은 자신의 주제가를 받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고객이 되는 이유다. 그야말로 일하며 즐기고 즐기면서 일하는 웰니스족의 표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대표뿐만이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형수 교수, 서울치과병원 민병진 이사장, 금호미술관 박강자 관장, 디자이너 조이연씨, 대교 베텔스만 코리아 김영관 대표 등 12명의 각계 명사가 이 대표와 함께 음악동호회 '데뮤즈(Demuse)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자선음악회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청소년 제소자와 극빈층에 기부하고 있다. 다양한 음악활동으로 업무 효율과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자선사업도 하니 즐거움이 두 배다.

이 밖에 다른 직업세계의 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취지의 사교 모임 '클럽 더 웰버(Club the Welber)', 독서를 통해 경영 능력과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경영자 독서 모임(Management Book Society)' 등도 또 다른 웰니스족들이다. 자신의 직업에 열정을 갖고 이를 발전시켜 다른 분야까지 즐길 줄 아는 생활태도가 곧 웰니스인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자. 요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아페르티보(Apertivo)'가 중요한 트렌드다. 사전적 의미로는 그저 식전에 간단히 먹거나 마시는 음식 또는 주류를 말하지만 밀라노의 아페르티보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유명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모여 식사 전에 비즈니스나 휴가계획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뤄지는 '애피타이징 미팅'이 곧 그것이다. 초면의 바이어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계약이 성사되기도 하는 현장이다. 그런 공간과 분위기를 통틀어 아페르티보라고 부르는데 밀라노 외에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밀라노 시민들은 아페르티보를 '삶의 여유를 누리며 일하는 세련된 방법', 즉 웰니스라 부르고 있다.

글=이훈범 기자 <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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