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내고 울고, 애정결핍 캐릭터 … 후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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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동해가 까칠한 인하로 돌아왔다. SBS 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주연배우 지창욱은 “워낙 피아노를 못 쳐서 피아니스트 역이 부담도 됐지만, 피아노 잘 치는 남자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했다.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다”라며 인하 배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하는 나쁘다. 경쟁자인 형을 질투하고 모함하며 늘 분노에 차있다. 그런데 측은하다. 어쩐지 편들어주고 싶을 때도 있다. SBS 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유인하는 그런 인물이다. 아버지가 혼외정사로 낳은 형 지호(주지훈)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모든 걸 형에게 다 빼앗겼다. 아버지와 할머니, 엄마도 그 녀석의 편만 들었다. 피아노 천재인 녀석을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첫사랑 그녀도, 그를 택했다.

 그런 인하라면, 그래 분노할 수도 있겠다. “난 천재로 태어나지도 않았고, 온전하게 자라지도 못했어. 근데 무슨 자격으로 내 인생에 대해서 왈가왈부야”라고. 인하의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지창욱(25)을 20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사에서 만났다.

2010년 시청률 40%를 넘겼던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의 순박한 청년 동해, ‘무사 백동수’의 무사 동수를 거쳐 이제는 인하가 된 그. 2년 전보다 5㎏이나 빠진 탓에 날카로운 인하에 더 가까워져있었다.

 -아직도 동해 이미지가 남아있다.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인하 역이 참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는 늘 누군가를 안아주고, 받아주고 힘든 걸 참아야 하는 역이었다. ‘나라면 이렇게까지 안 참을 텐데’라며 답답해 할 정도로. 그런데 인하는 애정결핍이다. 감정표출도 제멋대로 한다.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고 울고 싶을 때 운다. 후련하다.”

 -나쁜데, 밉지 않다.

 “악행을 저지르지만, 현실적인 캐릭터라 그런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이복형에게 뺏기고, 잘난 형 그늘 밑에서 살아야 했다면 얼마나 상처가 클까. 그럼에도 형이 천재인 탓에 질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더 슬프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대본을 보면 화가 난다. 인하가 자꾸 지기만 하니까. ‘또 버림받는 거야?’ 이러면서 한숨쉰다.”(웃음)

 -아역들의 연기도 화제가 됐다.

 “아역들이 너무 잘 해줬다. 그래서 편집실에서 모든 촬영장면을 보며 그 감정을 이어받아 연기하려고 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등장한 초반에 엄마와의 갈등이 너무 급작스레 풀렸다는 거다.”

 -피아니스트다. 연주 장면 촬영이 쉽지 않을 텐데.

 “직접 치고 싶지만, 음대에서 졸업공연에 쓰이는 수준의 곡들이라 어렵다. 그래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대역을 해준다. 함께 호흡을 맞추며 최대한 표정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한다. 피아노 앞에 있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서 계속 연구하고 있다.”

 -출생의 비밀, 복수와 살인 등의 자극적 설정으로 ‘막장’이라는 평도 있다.

 “나는 항상 작가님과 감독님을 믿고 한다. 그런 지적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열심히 인하를 표현하는 것뿐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

 이야기를 나눈지 한 시간쯤 됐을까. 젊은층에 좀더 인기 있는 미니시리즈에 대한 욕심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카메라 울렁증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부들부들 떨었었는데 매일 카메라를 만나야 하는 일일드라마를 통해 극복했단다. 이번엔 언제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던 거냐 물었다. 얘기는 더 길어졌다.

 “원래는 딱히 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다만 숫자(성적)에 제 인생을 맞춰갈 자신이 없었죠. 그러다 고3 때 연기를 꿈꾸게 됐는데 어머니가 매우 반대하시더라고요. 가출도 하고 만날 싸우고 집이 전쟁터였죠. 결국 연기를 전공하게 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버리는 경험은 없다는 걸. 지금은 어머니가 많이 좋아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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