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그라운드의 고독한 늑대 타이 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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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역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 물론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틀릴 것이다. 적어도 베이브 루스는 홈런 한방으로써 승부가 결정되는 현대야구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그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모든 야구기록들을 평가해 본다면 이런 생각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루스는 홈런과 타점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최고의 선수라는 입지에 올랐던 선수인 반면에 타이러스 레이몬드 캅은 루스가 이루지 못한 나머지 부문들에서 1인자의 위치에 올라섰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최고의 선수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캅은 조지아주 로이스톤에서 자라났다. 학교선생님이자 교장이면서 주 의원이었던 그의 아버지 윌리엄은 타이로 하여금 공부하도록 강요했고, 캅은 이런 아버지의 감시어린 눈 속에서 자라났다. 캅이 직업야구를 하겠다고 집을 나섰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그에게 "실패자로서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아버지의 따끔한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캅은 야구선수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고, 그가 타격에서 이루어 놓은 경지는 거의 전설적이라고 할 정도다. 통산 .366의 타율과 4191개의 안타, 그리고 12번의 타격왕(그가 첫 타격왕을 차지한 것은 20살때였다)이 이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캅이 남겨 놓은 야구 역사상 가장 높은 .366라는 통산타율은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캅은 빅리그에서의 그의 첫 시즌에 3할이 되지 못하는 타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캅의 24년간의 야구인생에 있어 3할이 되지 못하는 유일한 타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23번의 3할 중에는 4할타율도 세번씩이나 포함되어 있다.

캅에게서 볼 수 있는 놀라움은 비단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그는 24년 동안 무려 892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는데, 1915년에 기록한 96개의 도루는 거의 50년 동안이나 베이스 주자들의 공격에도 견뎌내었다.

캅의 35개의 홈스틸은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으며,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득점에서 현재까지는 최고의 선수로 남아 있으며, 1985년 피트 로즈가 자신의 안타기록을 깨기까지 거의 60년동안이나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이기도 했던 것이다.

1936년 캅은 226표 중에서 222표를 획득함으로써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98.23%의 득표율은 1992년 430표 중 425표를 획득하며 98.8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톰 세이버에 의해 깨지기까지 가장 높은 득표율이기도 했다.

캅의 최초의 위대한 시즌은 1907년에 다가왔다. 그리고 타이거즈는 그러한 성공을 통해 곧장 월드시리즈로의 길을 타게 되었다. 그 시즌에 캅의 타율은 .350이었고, 아메리칸리그에서 최고의 타율이었다. 그 밖에 212개의 안타와 119타점,그리고 49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그는 1907년부터 시작해서 9년 연속으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어떤 야구영웅들이나 부정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듯 팬들은 캅에게서 또 다른 것을 기억하고 있다. 캅의 공격적인 경기성향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어찌보면 그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데 있어 늘 장애물이 되곤 했던 것이다.

그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캅은 이기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찾았다.그는 그가 살던 데드볼과 투수들의 힘이 강했던 그 시대에 이용가능한 최상의 무기들인 자신의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타격을 사용했다.

캅은 또한 투수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의 약점을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워싱턴 세네터스의 위대한 투수 월터 존슨과의 대결에서 캅의 이 재능은 잘 나타나고 있다. 빠른 볼로써 타자들의 몸을 맞히기를 싫어했던 존슨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던 캅은 플레이트 가까이서 타격을 했다. 그래서 존슨은 캅을 바깥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카운트 판 뒤쪽으로 공을 떨어뜨렸다. 마침내 존슨이 플레이트 위쪽으로 칠 수 있는 공을 던지자 캅은 기어코 공을 쳐냈고 말았다.

캅은 성공을 위한 대가를 지불했다.그는 그의 다리가 발가벗겨질때까지 슬라이딩을 연습하곤 했다. 그는 농구대 속으로 공을 집어 넣는 번트 연습을 하기도 했고, 겨울 동안은 다가올 시즌을 대비해 강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무거운 장화를 신은 채로 하루 종일 사냥을 하기도 했다.

최고의 야구선수였던 캅은 또한 재테크면에서도 뛰어난 선수였다. 캅은 매년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디트로이트의 집행부와 연봉 협상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연봉을 얻어 내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은 제너럴 모터스사와 코카 콜라 주식에 투자함으로써 대부분의 돈을 현명하게 투자했다. 이 때문에 캅은 야구 선수로서 최초로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캅의 최고의 성과는 자신의 7번째 시즌이었던 1911년에 다가왔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최고의 기록인 147득점을 기록했고,248개의 안타와 47개의 2루타,24개의 3루타,127타점과 .420의 타율,그리고 .621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그는 이 모든 부문에서 아메리칸리그 1위였고,또한 83개의 도루로 도루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캅은 프랭크 "홈런" 베이커가 11개의 홈런으로 홈런 1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트리플 크라운은 3개의 홈런차로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그는 또한 이 시즌에 아메리칸리그 기록인 40경기 연속안타도 작성했고, 이 때문에 조 잭슨을 간만의 차이로 누르고 타격왕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시즌 동안 캅은 단지 2번만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을 뿐이다. 그 기록들은 캅의 강한 승부근성을 숨기도록 했고, 그에게 역사상 최초로 MVP를 수상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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