蕩平<탕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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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27면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정문 어귀에 고색창연한 비각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탕평비각’(蕩平碑閣). 노론·소론을 고루 등용하여 불편부당의 탕평책을 수립한 조선 영조가 재위 18년째인 1742년 3월 친필을 내려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균관 유생들에게 붕당정치의 폐해를 경계하고, 정치의 올바른 길을 일깨워주기 위해 비를 세웠을 것이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비문에는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 是小人之私意’라는 영조의 친필이 뚜렷하다. ‘편당을 짓지 아니하고 두루 화합함은 군자의 공심이고, 두루 화합하지 아니하고 편당을 짓는 것은 소인의 사심이다’라는 뜻이다. 원래 이 말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子曰, 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라는 말을 응용한 것이다.

공자의 말은 ‘군자는 사람들과 넓게 어울리되 특정인과 결탁하지 않고, 소인은 특정인과 결탁하려 하되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禮)를 지키지 않고, 남들과 어울려 소란을 피우는 왕실 주변의 인물들을 비난한 말이다. 논어의 이 말에 ‘군자의 공심(公心)과 소인의 사의(私意)’를 추가함으로써 공평하게 사람을 쓰라는 ‘탕평’의 의미를 더 살렸다.

‘공정한 정치를 해야 통치자의 입지가 평탄하다’는 뜻의 ‘탕평(蕩平)’은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뿌리를 둔 말이다. 서경은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편무당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偏無黨 王道平平)’이라고 했다. “편향되지 않고, 당파로 갈라지지 않아야 왕도가 넓고 공평하게 펼쳐진다”는 뜻이다. ‘무편무당(無偏無黨)’이 왕도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얘기다.

‘탕평비각’은 270여 년 전, 임금이 앞장서 ‘탕평’의 표석을 세울 만큼 우리 선조들은 새 정치를 구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우리나라 정계는 당으로 나뉘고, 같은 당 안에서도 파벌에 따라 또 갈려 걸핏하면 핏대를 세우며 싸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그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능력에 따른 공정한 인사보다는 공에 따라 자리를 나눠주기도 한다. ‘두루두루 화합하되 편당을 짓지 말라!’ 영조의 한마디가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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