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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역배우' 언니 집단 성폭행…두 자매 비극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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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오후 8시18분. 18층 건물 옥상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유서엔 이런 글을 남겼다. “단단히 나를 건드렸다. 35년 동안 갈기갈기 찢겨진 내 인생, 죽을 수밖에 없다”고. 그녀가 숨지고 일주일도 안 된 9월 3일, 동생이 언니의 뒤를 따라 1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동생은 유서에서 “엄마가 남아서 복수해 달라”고 했다.

두 달 뒤엔 자매를 한꺼번에 잃은 충격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 약으로 고통의 나날을 버티고 있다. 도대체 이 자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3일 오후 9시50분 JTBC ‘탐사코드J’에서 보도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2004년 여름, 방송 일을 하던 동생은 대학원생 언니에게 재미 삼아 드라마 엑스트라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언니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엑스트라로 활동했다. 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녀가 단역배우 활동 3개월 만에 달라졌다.

출장에서 돌아온 그녀는 이유 없이 벽을 할퀴고, 거실을 서성였다. 극도로 불안해했다. 집안 살림을 부수기도 했고, 이를 말리던 엄마와 동생에겐 평소 입에 담지 않던 욕설까지 늘어놓았다.

결국 가족들은 경찰의 도움으로 큰딸을 정신병원에 데려갔다. 병원 상담 중 딸의 입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활동 3개월 동안 4명의 엑스트라 반장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성추행을 가한 반장도 9명에 달했다. 어머니는 딸이 지목한 13명의 반장들을 모두 경찰에 고소했다.

대학 시절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는 큰딸. 그녀는 경찰 진술에서 첫 번째 성폭행을 당한 뒤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쇼크 상태에 빠진 그녀가 다른 피의자들에겐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의자들은 한결같이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반박했다.

피의자들과의 끝없는 대질신문,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다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딸. 건강이 악화된 딸은 스스로 고소를 취하했고 피의자들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에도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그녀의 악몽은 지워지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의 진료기록을 살펴본 김정일 정신과 전문의는 “성폭행에 따른 충격으로 조울증 등 정신장애가 깊어진 경우”라며 “특히 회복됐을 때 상처가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들은 자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 모르는 상태. 취재진이 사실을 설명하자 가해자들은 순간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발뺌하기에 바빴다.

손용석 기자 sonc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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