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왕시, 연거푸 살수를 던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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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2국
[제12보 (148~160)]
黑 . 왕시 5단 白 . 이세돌 9단

살든 죽든 일단 대마를 끊어놓고 본다. 왕시(王檄) 5단도 이 대마를 잡을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밖에 없으므로 눈을 감고 간다.

장막 안에서 천 리를 내다본다는 바둑이지만 때로는 이처럼 앞날에 눈을 감고 돌진해야만 한다. 승부는 그런 것이다. 형세가 불리해지고 패배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 누군들 옥쇄를 각오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세돌 9단은 150으로 근거를 잡는다. 연결이 어려워졌으므로 일단 안에서 두 집 내는 궁리를 한다. 여유는 있다. 출구가 막혔다고는 하나 패의 형태라서 최악의 경우 비빌 언덕이 있다. 다만 유리한 형세에서 괜한 모험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왕시는 151로 푹 들어온다. 손익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모든 살수(殺手)를 총동원해 치명상을 가하려 한다. 152에 153의 옆구리 붙임도 치열의 극을 달린다. 왕시가 이처럼 용감한 사람이던가.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초반 하변에서 성공해 이기는 길이 숱하게 널려 있을 때 이 같은 용감성의 10%만 발휘했더라면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승부사도 약한 인간일 뿐이다. 유리했을 때는 행여 접시가 깨질까봐 노심초사해 적의 화살 앞으로 몸을 내밀지 못한다. 이제 형세가 뒤집혀 비세에 빠지자 접시는 고사하고 온몸이 고슴도치가 되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이세돌의 154는 '참고도' 백 1로 이어도 된다고 한다. 2로 넘어가도 A의 약점 때문에 5로 붙이면 살 수 있다. 그러나 154가 좀 더 좋다. 패가 귀찮기는 하지만 160에 두면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는다. 지금의 형세는 거의 반면 승부. 덤 없이 비슷한 국면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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