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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철수와 일본 안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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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지난 12일 밤 일본 오사카(大阪)의 호텔에서 열린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의 정치자금 모금 집회. 일본 정계의 43세 기대주인 그가 ‘일본유신회’란 전국정당의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올해 안에 치러질 가능성이 큰 차기 총선에서 돌풍을 꿈꾼다.

 “이렇게 많이 와주시다니, 하하하…. 2년 전만 해도 오사카시와 오사카부가 통합될지 누가 알았나. 신문이든 TV든, 지식인이든 정치 해설자든 모두 바보들뿐이다. 2년 앞도 모르면서 어떻게 30년, 40년 뒤 일본을 말하나.”

 ‘대오사카 건설’이란 본인의 치적을 부각하며 언론들을 단칼에 깔아뭉개는 것으로 그의 연설은 시작됐다. 노타이에 원고도 없이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연신 몸을 흔들어댔다. 남을 은근히 깔보는 듯한 말투의 하시모토스러움이 두드러진 23분간의 원맨쇼였다. 다른 당에서 영입한 의원 7명을 전리품처럼 연단에 올려 세운 그는 “일본의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일본 지도가 그려진 신당의 로고를 가리키며, 지도에 있지도 않은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가 들어 있다고 우겨댄 것도 하시모토다웠다.

 ‘일본의 안철수’ 하시모토는 이렇게 출전 나팔을 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9일, 이번엔 한국의 진짜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넥타이를 단정히 맨 그는 프롬프터(문자 디스플레이 모니터)에 뜨는 원고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고, 일부러 결연한 태도를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착함과 부드러움, 약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요약되는 이미지가 감춰지지 않았다.

 하시모토가 ‘일본의 안철수’로 불리는 이유는 ‘기존 정당과 기존 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등에 업고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과 정치 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하시모토의 꿈은 끝없는 정쟁으로 1년에 한 번씩 총리가 바뀌는 일본 정치의 유약함을 때려부수는 거다. 그래서 심하다 싶을 정도의 마초적 태도로 ‘강력한 지도자’의 인상을 심으려 한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주간지가 술집 여종업원과 그의 불륜을 폭로했다. 7남매의 아버지인 하시모토는 “공직에 진출하기 전엔 성인군자처럼 살지 않았다”는 당당한 태도로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그는 ‘일 안 하며 예산만 축내는 국회’ ‘애국심 부족으로 일장기에도 기립하지 않는 좌익 교사들’ ‘몸에 문신을 한 오사카 시청 직원들’과 같은 가상의 적을 스스로 만들고 그들과 싸운다.

 그에게 정치는 끝없는 투쟁이며 전쟁이다. 대선 출마 선언에서 ‘분열보다는 통합’ ‘독주보다는 수평적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의 안철수와는 다른 접근법이다.

 두 사람의 도전은 이제 막 출발점을 떠났다. 다른 스타일, 다른 방식으로 도전을 시작한 두 사람 중 과연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