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6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한국 남자들 술자리에 가면 군대 얘기 빼놓으면 곧 파장이 되고 말 거라는 소리도 있으니, 입대란 일종의 성인식이면서 통과의례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렇게 분단된 이 땅에서 태어난 팔자를 스스로 원망하면서도 나중에는 은근히 자신의 일부를 만들어 준 그 누더기 같은 삼년 여의 세월을 자부하게 되다니.

진해에서 전반기 8주와 상남에서 보병이 되는 4주의 훈련을 받고 나면 거칠고 사나운 '바다의 싸나히'가 되기 마련인데, 겉모양은 미 해병대의 교육 방법을 그대로 본떴지만 내무반 속을 들여다보면 일제 육전대 식의 가혹한 기합과 빠따가 거의 일상이었다. 하여튼 철통 같은 일체감을 주기 위해서 동기생에 대한 전우애를 강조하고 타군을 오합지졸로 보라는 식의 교육이 하사관들에 의하여 거의 날마다 주입되기 마련이다. 내무반 곳곳에는 그럴듯한 표어가 붙어 있다. 예를 들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이미 고전이 되었고, '전우여 오늘도 말없이 수고했소' 라든가, '귀신 잡는 해병' 또는 '무적 해병'이라고 붉은 바탕에 노란 페인트로 씌어 있다. 두 달이 못 가서 장정들은 어느새 삼군의 최강부대 해병대임을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 지르며 강렬한 소속감을 지니게 된다. 지금도 시골 어느 읍내에 가든 붉은 바탕에 앵커가 그려진 '해병전우회' 사무실이 없는 데가 없고 으레 얼룩무늬 위장복에 팔각모를 쓴 늙은 예비역이 교통정리를 한다. 내 경험이지만 방북하고 나서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과 미국을 떠돌던 때에 미국에서 겪은 일이다. 앞집 세탁소 아저씨가 찾아오더니 여기도 해병전우회 지부가 모이는데 나와서 '좋은 얘기' 좀 해달란다. 그래서 온 세상이 다 아는 대로 내가 북한을 방문했던 불온한 사람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고, 해병대엔 불순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간단한 결론이었다.

군대 얘기가 나오니 소설가 송영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절에서 나온 뒤 그야말로 대합실에서의 기다림과 같던 두 해 동안의 어느 무렵이었을 것이다. 최민기와 약속이 있어서 나갔더니 얼굴이 허여멀끔한 조용한 얼굴의 사내가 함께 앉아 있었다. 다방 안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밖으로 나와 언제 꺼냈는지 검은 색안경을 쓰자 마치 장님 안마사처럼 보였다. 굵은 바리톤으로 노래도 잘 하고 묘한 소리로 휘파람도 잘 불었다. 얼마 안 가서 그가 해병대 탈영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위 친구들이 모두 그의 형편을 동정해서 거처를 마련해 준다든가 자기가 사는 하숙집에 함께 데리고 있든가 했는데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대개는 송영이 파투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에 대하여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는 눈치였고 오히려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를 테면 내심 깊이 사귀지 않고 보면 '괴짜'인 셈이다. 나는 지금도 그가 단편 엮어내는 솜씨로는 당대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그의 무책임한 게으름에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몇 달간 학원 선생을 하다가는 갑자기 종적을 감추곤 했는데 해병대 탈영병 체포조의 추적이 집요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말뚝 박아 데리고 가겠다는 의지가 강철 같았다. 송은 어떤 때에는 체포조에 거의 잡힐 뻔했는데 친구네 집 창문 턱을 짚고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왓장 위에 납작 엎드려 있어서 모면했던 적도 있었다.

그림=민정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