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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드래프트 특집] 고졸 선수 이야기 (2)

중앙일보

입력

'역사는 항상 승자만을 기억한다'

이말은 스포츠에서도 통할 수 있는데 거의 항상 승자와 성공한 팀이나 선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진다.

역대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리고 지명을 받아 프로생활을 한 그리고 해오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모제스 말론, 다렐 도킨스, 케빈 가네트,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같은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내용은 위에 언급한 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말론, 도킨스, 가네트, 브라이언트와 같이 될 수 없었던 어쩌면, 그들의 선택이 2년이나 4년만 연기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주는 선수들의 이야기다.

◇ 빌 윌로비

다렐 도킨스와 함께 1975년에 프로에 데뷔한 윌로비는 뉴저지주의 잉글우드에 위치한 드와이트 모로우 고교를 졸업했다.

203cm의 스윙맨으로 2라운드 19순위(당시 NBA 에는 18개팀밖에 없었다)로 애틀란타 호크스에 지명되었다. 입단 동기인 도킨스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뉴저지 네츠를 거치며 이름을 떨친 것에 비하면 그는 프로 생활 내내 `저니맨'에 머물렀다.

9년의 NBA 생활 동안 무려 6개팀을 전전하며 평균 6점이라는 기록만을 남기고 83~84시즌 은퇴하게 된다. 18세에 프로선수가 되었던 그는 결국 27세의 한창나이에 NBA 를 떠나게 된 것.

이후 윌로비는 은퇴한 NBA 선수들의 모임(the XNBA)에서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NBA 의 신인 선수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도 참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어웨이 딕킨스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며 뒤늦게 학사모를 쓰기도 했다.

윌로비는 비록 NBA 에서 선수로서의 경력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고졸 선수들의 드래프트 참가에 개척자로서 NBA 의 한장을 차지하고 있다.

◇ 타즈 '레드' 맥데이비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윌밍턴의 팔메토고교의 스타였던 맥데이비드는 고교 3년간 평균 26득점, 12리바운드, 4블럭샷을 기록한 198cm의 포워드였다.

맥데이비드가 96년 드래프트 참가를 신청했을때 많은 이들은 그의 신장은 포워드보다는 가드가 더 어울릴 것이라 말했다. 고교때 그의 주득점 루트는 골밑이었기 때문에 드래프트 되더라도 슈팅 레인지 문제 때문에 잘해야 2라운드 마지막에 지명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결과는 NBA 29개팀의 철저한 외면이었다. 하지만 맥데이비드가 드래프트를 신청하게된 배경은 바로 그의 성적이 NCAA 규정에 못미치는 바람에 도저히 대학에 진학해서 농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궁여지책으로 드래프트에 참가를 한 것. 이후 맥데이비드는 1년간의 공백을 거친후 현재 고향의 조그만 학교인 앤더슨칼리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향후 드래프트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 엘리스 리차드슨

뒤에 소개할 레온 스미스와 함께 대표적인 고졸 실패사례에 든다. 스미스가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은 이후의 문제로 망친 경우라면 리차드슨은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이후 문제로 인생 경로가 바뀌었다.

켈리포니아주 선 벨리의 폴리테크닉고교의 가드였던 리차드슨은 평균득점 21점으로 팀의 주공격수로 활약했었다. 하지만 그는 켈리포니아 주 선발팀에도 들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학교 실력도 낮은 곳의 에이스였지 결코 올어메리칸은 아니었다.

98년 드래프트 참가를 선언하자 주위에선 리차드슨에게 좀더 경험을 쌓고 나중을 기약하라는 말이 많았고 당시 그는 수비력과 볼핸들링에서도 부족한 면을 많이 드러냈었다.

그러나 리차드슨은 드래프트 참가를 강행, 지명도 받지 못했고 결국 대학 진학도 못하게 되었다. 드래프트 직후부터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는 결국 강도사건으로 검거되어 현재 LA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 콜레언 영

영은 버지니아주 하그래브 밀러테리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대학을 건너뛰고 98년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하그래브 밀러테리 아카데미 이전 위치타주의 이스트고교에서 평균 22.4득점, 10.3리바운드을 기록했고 하그래브에서는 평균 30.3득점, 11.4리바운드를 올리며 `USA Today'지 선정 올 USA 퍼스트팀에까지 선정되었다.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2라운드 40순위로 지명하며 영은 프로에 데뷔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종착역이었다.

트레이닝캠프를 거치며 시범경기까지 총 15분만을 NBA 유니폼을 입고 뛰었을 뿐 영에게 NBA 는 아직 넘지 못할 거대한 산이었다.

결국 정규시즌 개막과 함께 방출되고 말았다. 이후 99년 신설된 리그인 IBL의 '리치먼드 리듬'에서 프로 생활을 이어나갔고 현재 IBL을 비롯한 여러 하위리그를 전전하며 NBA 로의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

◇ 레온 스미스

스미스의 모습은 드래프트에서 조기 진출자(고졸선수들도 포함한)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마틴 루터킹고교의 신화였던 스미스는 9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9순위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지명을 받았고 바로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당시 매버릭스는 '제 2의 케빈 가네트'로 스미스를 키울 요령이었다. 하지만 고교졸업자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거금의 계약금이 스미스에게 주어지고 주위의 지나친 기대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될쯤 자살 소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사건과 함께 스미스에게는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에 대한 폭행혐의까지 덧붙여 일어나게 되어 결국 매버릭스는 그를 방출하게 된다. 스미스는 그후 계속적인 약물중독 등으로 보호소와 치료소 신세를 지게 되었다.

매버릭스 구단측에서는 아직도 계약금으로 스미스에게 14만 5천불을 지급하고 있는 처지이다.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이 끝나보이던 그는 얼마전 ABA 2000 과 IBL 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문제를 일으켜 결국 방출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고졸 출신 선수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실패담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고졸 출신 선수들 중 어떤 선수가 순간의 선택으로 위와 같은 인생유전을 맞게 될지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린나이에 무슨 인생유전이냐는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선택해야될 문제는 그만큼 신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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