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고급 정보 이런 데도 쓰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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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6~7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엔 외국인을 태운 차량이 몇 차례 드나들었다. 이들은 외국 정보기관 요원들이 아니었다. 국정원을 찾은 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피치·S&P의 실사단이었고, 이들을 맞이한 건 국정원 대북 정보요원들이었다. 양측은 의전행사 없이 즉시 브리핑과 질의응답에 들어갔다. 국정원의 초청으로 이뤄진, 전례 없는 면담이었다고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실사단의 질문은 대략 두 가지에 집중됐다고 한다. 새로 등장한 북한의 김정은이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국지적인 무력 충돌 또는 큰 규모의 남북 충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브리핑과 답변은 이공계 명문대학 출신으로 국정원에서 북한을 담당하는 A씨, 수십 년간 북한을 들여다본 베테랑 B씨 등이 했다. 특히 A씨는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들이 좋아할 만한 자세한 수치 데이터들을 제시하며 설명했다고 한다. ‘한국은 안전하다’ ‘도발 위험은 없다’는 식의 주장보다 눈에 보이는 수치를 제시했더니 잘 먹혔다는 게 정부 당국의 사후 평가다. B씨도 북한의 실상과 한국 정부의 판단을 있는 그대로 알려줬다.

 이런 설명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승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게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의 분석이다. 북한 리스크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인식 변화가 등급 조정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지난 14일 S&P의 등급 조정과 관련해 “북한 리스크가 완화됐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일 사망 이후 관계부처의 합동 대응이 주효했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관계부처란 국정원을 가리킨다. 국정원 요원들은 지난 1월 말 S&P 평가단을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는 최 차관보와 동행했다. 현지에서 국정원 요원들은 S&P 애널리스트들에게 직접 북한 정세를 브리핑했다고 한다. 이어 지난 6~7월 3대 신용평가사가 각각 한국에 현장 실사단을 파견했을 때도 국정원이 움직였다.

한 정부 소식통은 “무디스(6월 5~8일), 피치(7월 10~12일), S&P(7월 17∼19일)가 차례로 서울에 실사를 나왔을 때 국정원 고위 간부가 이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와 국민이 안보에 자신감을 갖고 충분히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듣게 설명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물론 금융계·재계에서 과장된 북한 리스크 탓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저평가돼 왔다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북한 리스크를 객관적으로 평가받으면서 우리나라의 등급이 상승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하지만 성장률 하락, 가계부채 증가, 수출부진 등 경제가 전체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오른 등급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과 다소 동떨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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