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경제 살리기 … 싱 총리, 개방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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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성중앙회 회원들이 18일 수도 뉴델리에서 “만모한 싱 정부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정부가 지난 14일 소매업·항공·방송 분야에 49~74%의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등 깜짝 경제 개혁안을 발표하자 야당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뉴델리 AP=연합뉴스]
싱 총리

‘빅뱅 프라이데이’.

 지난주 인도발 메가톤급 경제 개혁안이 쏟아지자 깜짝 놀란 외신들이 붙인 별명이다.

 시작은 13일 밤 단행된 경유 가격 인상이다. 만모한 싱 총리는 연료보조금을 줄여 경유 가격을 사실상 L당 5루피(12%) 올렸다. 그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수년간 휘발유 값을 낮추고자 안간힘을 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14일에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더 큰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수퍼마켓·할인점 등 여러 제품을 파는 다품종 소매점에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51%까지 허용했다. 단일 품종 소매점은 100%까지 가능해지면서 월마트·이케아 같은 외국 대형 체인이 인도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개방 결정을 내렸다가 야당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결정 이행을 무기한 보류했었다. 항공·전력거래 부문은 49%, 방송은 74%까지 완화됐다. 오일 인디아 등 5개 국유기업의 주식 매각도 허용됐다.

 숨 돌릴 틈도 없이 2단계 개혁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인도 일간 이코노믹타임스는 17일 재무부 관리를 인용해 조만간 특정 부문 기업의 해외자금 차입한도 상향 조정, 대형 사업에 대한 행정절차상 장애물 제거,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자금 투자 제한의 완화 등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26일이면 여든을 맞는 싱 총리는 단숨에 늙고 우유부단한 이미지를 떨쳐냈다. 올 4~6월 인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9년 만에 최저인 5.5%로 주춤했다.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6%에 육박했다. 물가가 고공행진 중인 데다 브릭스(BRICs) 국가 중 가장 먼저 국가 신용등급이 투자위험수준(정크)으로 강등될 위기에 처하면서 투자마저 씨가 말라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개혁 시도 때마다 발목을 잡던 실질적 1인자인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INC) 당수의 암묵적 승인도 힘을 보탰다. 싱 총리는 치담바람 재무장관과 함께 지난 2주간 세 번이나 당수를 찾아가 “고도 성장 없이 가난한 수백만 명에게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학자(싱)와 변호사(치담바람) 콤비가 복지 최우선주의자 소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낸시 파웰 주 인도 미국 대사는 “인도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고, 신용평가사 피치도 “잠재적 위험이 존재하긴 하지만 첫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 및 주정부의 반발 또한 거세다. 바네르지 웨스트벵골 주 장관은 “72시간 내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압박했다. 뉴델리에서는 연일 수백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민들 다 죽는다” “만모한 싱 총리 타도”를 외쳤고, 남부 케랄라주에서는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총파업을 선언한 뒤 상점·대중교통 등의 영업이 중단됐다.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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