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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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예전 한의원들은 겨울을 대비한 면역증강용 보약을 짓는 환자들로 북적댔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여름처럼 여전히 비만치료제를 구하는 사람들이 손님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비만 치료를 위해 내원한 환자들은 “도대체 왜 나는 살이 잘 찔까?” “왜 나는 좀처럼 살이 잘 빠지지 않나?”라는 질문을 한다. 답은 유전자의 속성, 즉 체질이다.

인구의 반 차지하는 태음인, 에너지 흡수율 높아

살이 찌는 체질의 대부분은 태음인과 소양인이다. 태음인은 대략 전 인구의 50% 정도이고, 소양인은 30%를 차지한다. 그 중 태음인이 살이 더 잘 찌는 체질이다. 태음인은 몸이 나빠지면 간의 흡취지기(吸取之氣)가 더욱 강해지고, 폐의 호산지기(呼散之氣)가 약해진다. 흡취지기는 내 몸으로 빨아당기는 기운을 말하고, 호산지기는 내 몸에서 찌꺼기를 배설하는 능력을 말한다.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태음인과 소양인을 합하면 무려 전 인구의 80%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살찌는 체질이 절대 다수라는 말인데 왜 그럴까. 150년 전 사상의학이 창안될 당시에는 태음인이 비만의 표상이 아니었다. 현재 북한의 태음인이 비만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태음인이야말로 과거 인간이 처했던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적절한 신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가장 환경에 잘 적응된 체질이었다. 반면 육체적으로 적응이 약했던 체질이 소음인(20%)과 태양인(1%)이다. 이 체질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먹어도 흡수가 효율적으로 안돼 마르기 쉽다. 요즘은 이런 체질이 좋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생물학적으로는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의 최고로 큰 본능은 자기 복제다. 복제의 방법으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생식을 통한 종족번식이다. 생존에 열악한 환경이었던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도 적당한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는 체질, 즉 태음인과 소양인들이 성인까지 생존했을 가능성이 더 높고, 이성에게도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때문에 태음인과 소양인은 훨씬 더 많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반면 약한 체질이었던 소음인과 태양인은 성인까지의 생존확률도 낮고, 덜 매력적이어서 생식을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 결과 이들의 유전자가 적게 전해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런 상황이 역전됐다. 오히려 약한 소음인이 더 매력적인 대상이 됐다. 이제는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고 예전처럼 농사나 힘든 가사일을 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먹을 것은 풍족해졌으니 태음인, 소양인은 살 찔 일만 남았다. 계속 이런 풍요로운 세상이 유지된다면(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소음인의 유전자가 생식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져 먼 훗날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태음인은 지방 축적이 잘 되는 체질이므로 습(濕) 체질이 된다. 가을은 우주기운적으로 조(燥, 건조)의 계절이다.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고 식욕도 더욱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몸매관리, 즉 비만치료에 있어서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먹고 힘들게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상위의 개념은 도대체 내 몸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다.

 원래 태음인은 약하지 않아 보약을 잘 복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만해지면 그 어떤 체질보다도 피로함을 느낀다. 질병에도 잘 노출된다. 이때 보약을 쓰는 것이 아니라 흡취지기를 제한하고 호산지기를 강화시키는 치료를 하면 피로도 개선되고, 살도 빠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성각 본초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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