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베이스] 최고 추구하는 박찬호의 흉내

중앙일보

입력

98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던 케빈 브라운과 맞대결을 벌인 박찬호는 그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리 꼬고, 저리 꼬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싱커를 주무기로 하는(싱커를 던지기 위해선 손목과 팔꿈치를 틀어야 하고 선수들은 흔히 이를 '꼰다'고 한다) 브라운의 투구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듯 했다. 또 같은 팀 동료도 아닌 적을 애써 칭찬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99년 브라운이 LA 다저스로 이적해 온 이후 점점 그를 닮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투구동작때 입술을 얇게 오므리는 모습을 닮더니 이후엔 아랫 턱을 내밀고 하는 심호흡도 빼다 박은 듯 하다.

박찬호는 원래 흉내를 잘 낸다.

94년 그가 처음 미국언론의 관심을 모은 건 태권도 발차기같은 와인드업때의 하이키킹이었다. 막연하게 동경해오던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을 흉내낸 것이었다.

오렐 허샤이저가 다시 다저스로 돌아온 지난해에도 새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을 던지는 중간 중간 오른 손을 곧게 펴 이마 위 땀을 양쪽으로 쓸어내는 모습은 박의 고교시절 최고투수이던 오렐 허샤이저 특유의 버릇이었다.

올해부터는 사인을 보는 모습도 달라졌다. 지난해까진 글러브를 낀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인을 보았는데 올해는 양손을 허벅지 위로 늘어뜨리고 턱을 당긴 채 거만하게 서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브라운이다.

박찬호의 흉내는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다.

이미 메이저리그의 당당한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최고를 추구하며 메이저리그의 정상을 좇은 것이다.

그런데 올시즌 브라운이 잦은 부상으로 흔들리는 사이 박찬호는 허리통증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이 내려 놓은 에이스의 짐을 조금씩 자신의 어깨로 옮겨 지며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올시즌이 끝나면 박찬호는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이제 메이저리그가 박찬호를 좇아야 할 때가 머지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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