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과시 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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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18면

나는 김기덕 감독을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다.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영화가 좋았고, 돈보다는 신념을 좇는 삶도 감동적이다. 직접 집을 짓고 텃밭을 화장실로 쓰는 무공해 삶이 특히 존경스럽다. 아름답게 물들인 갈옷과 염색하지 않은 머리에 낡은 구두를 신고 영화제에 등장한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고 멋있었다. 꽤 값이 비싸다는 뒷말이 있지만 유해한 폐기물을 쏟아내지 않고 물들인 옷차림은 훌륭한 레드카펫 패션으로 손색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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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책 따위는 읽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으니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월든을 쓴 헨리 소로나, 탑을 하나하나 손으로 쌓으며 전기도 없이 은둔했던 분석심리학자 체 게 융을 따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근대의 서양과는 달리 노장(老莊)과 유교적 청빈의 전통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했던 전통을 요즘 우리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다. 소박함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조선시대와 가난했던 근대에 대한 반작용일까. 21세기 한국인은 종교 대신 어느새 화려한 삶을 숭앙하게 된 형상이다.

예컨대 소박하고 정갈했던 한식에 ‘퓨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붙인 뒤 요란하게 큰 그릇에 담아 정체불명의 소스를 범벅해 놓고는 그릇을 나르는 사람들의 품과 설거지에 드는 세제와 물은 고려하지 않는다. 빚을 지고서라도 넓은 집에 살려 하고, 남은 음식과 유행 지난 옷을 버리는 것을 세련된 소비 태도라 간주한다.

필자의 경우 나만을 위해 자동차 굴리지 않기, 식당에선 남기지 않을 만큼만 주문하기, 집 냉장고에서 음식이 버려지는 일 없기, 명품 브랜드는 사지 않기, 스프레이나 아세톤·염색약 등은 가능한 한 쓰지 않기 등등 나름대로 지키려는 원칙이 있는데 때론 주변에서 궁상스럽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아끼고 절제하는 사람을 촌스럽다고 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

강남의 벼락부자와 그 추종자들을 풍자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 중 하나도 한국적 과시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

쓰고 또 쓰라고 최면을 걸었던 매스컴이나 기업만 비난받을 게 아니다. 정신의학계도 책임이 있다. 예컨대 프로이트의 ‘성욕설’은 ‘욕망의 절제’보다는 일단 누리고 배설하는 삶이 훨씬 건강하다고 믿게 만든 점도 있다. 욕망이 기술과 자본을 등에 업고 환경을 황폐하게 해도 사실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정신분석가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에는 환경심리학(Eco-psychology), 자연보존심리학(Conservation psychology) 등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 중심으로만 자연을 탕진해 버리면 동식물이 멸종되고 오존층이 훼손되며, 온난화가 심해지면 농작물 생산이 감소하고 결국 내 살림살이도 팍팍해진다.

먹고살기 힘든데 정신건강이 온전할 리 있겠나. 정치·경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부모한테 받은 상처나 성적 억압만 문제로 삼는 것은 부유한 유한부인에게나 맞는 가설이다. 우리를 품어 준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고 사는 인류의 끝이 어디인지. 철학자 니체가 말했듯이 스스로 통제할 줄 모르는 인류는 지구엔 참 나쁜 암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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