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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국 함정 완전히 벗어나… 더 도약하려면 혁신 필수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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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20면

톰 번(Tom Byrne) 무디스의 수석부사장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신용등급을 총괄한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 이전부터 무디스에서 한국 신용등급을 담당했다. 70년대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경남 마산에서 머무른 적이 있는 지한파. 부인도 한국인이다.

세계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장 급속히 진행되는 나라, 1000조원 가까운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으로 자리 잡은 나라,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추락하는 나라, 한국의 이런 고민은 국가신용등급에 얼마나 반영됐을까. 한국 신용등급 상향 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톰 번 아시아·태평양 신용등급 담당 부사장에게 물어봤다. 그는 무디스 내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으로 이번 상향 조정을 주도했다. S&P가 마지막으로 한국 등급을 올린 14일 오후 싱가포르 아태 사무소에 있는 그로부터 e-메일 인터뷰에 대한 회신이 왔다.
 
한국, FTA에서 성장 동력 찾아야
-한국 등급 상향을 한 가장 큰 배경은.
“정부의 재정 안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도 정부 재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재정 건전성은 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선진국에 버금간다. 중장기 경제성장률 전망도 다른 주요국보다 나은 편이다. 국가 부채 역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앞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무디스가 보는 한국경제, 톰 번 부사장 인터뷰

-Aa3 등급은 얼마나 좋은 등급인가.
“무디스의 21개 신용등급 중 넷째로 높은 등급이다. 동시에 향후 4년 내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확률이 0.3%라는 것이다. 중국·일본·벨기에·대만 등이 Aa3 등급이다. 최고등급 Aaa인 미국·독일 등은 4년 내 디폴트 확률이 제로다. 터키·아일랜드 등은 투자부적격 등급인 Ba1이다. 이 등급의 국가 디폴트 확률은 5.3%에 달한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더 오르려면 뭘 개선해야 하나.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진국 함정(Middel-income trap)’에서 완전히 벗어난 몇 안 되는 나라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급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정체되는 현상이다.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지금까지 이룩한 ‘한강의 기적’ 이상의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혁신이 경제를 이끄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열심히 추진하는 대외 자유무역협정(FTA)이 경제 동력이 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투명성 강화가 더 필요하고, 민관이 소통해 공공정책을 생산하는 협치(協治)의 거버넌스(Governance)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한국의 등급이 경제대국인 일본과 동급, 또는 그보다 낫다는 것이 잘 실감나지 않는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맞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꺼번에 신용등급을 몇 계단씩 떨어뜨린 기억이 생생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가. 그럼 객관적인 등급 평가 기준으로 한·중·일 3국의 경제상황을 비교해 보자.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점수가 높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디스에서는 국가신용등급을 매길 때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눠 평가한다. 경제 규모,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이다. 각 항목별로 ‘매우 높음(very high)’ ‘높음(high)’ ‘보통(moderate)’ ‘낮음(low)’ ‘매우 낮음(very low)’ 다섯 단계로 평가한다. 한국은 3개 영역에서 모두 최고 점수인 ‘매우 높음’을 받았다. 반면 일본은 경제성장률 영역에서 점수가 좋지 못하고,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적어 감점 요인이 됐다.”

-해석이 좀 더 필요하다.
“경제 규모는 중국-일본-한국 순이지만 실업률·생산성 등을 고려한 경제력은 반드시 그 순서라고 볼 수 없다. 한국은 세계 시장에 다양한 산업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내수시장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실업률이 낮은 편이다. 한국 경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발전을 하게 될 걸로 기대된다. 물론 생산성 향상이 꾸준히 뒷받침돼야 한다.”

-정작 한국 내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부류가 많다.
“가계부채가 한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당장 금융권이 흔들리거나 정부 재정이 어려워지는 건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는 소비 위축 등 내수 침체를 잠재적 위험으로 본다. 소비 부진이 지속되면 한국의 성장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수출의 감소세도 뚜렷하다.
“수출 감소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성장률 둔화 등으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대외적인 요인 때문이지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약해진 건 아니다.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한국의 수출은 다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북한 리스크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
-북한 리스크가 등급 상향에 미친 영향은.
“김정은 체제가 처음 들어섰을 때보다 북한 리스크가 줄었다고 판단했다. 등급 상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강한 영향력과 굳건한 한·미 동맹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긴장 고조를 막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여전히 한국 경제의 불안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신용등급 조정을 위해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인사를 만났다는데.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의 정부 인사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여야 정치인들과도 접촉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과의 정기 간담회를 통해 객관적이고 정교한 거시경제 시각을 공유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점검하려고 관련 정부 부처 인사들과도 얘기를 나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2.5%가 무디스의 공식 전망 수치다. 물론 대외 여건이 더 나빠지면 1%대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올해 성장률만 보고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 성급하게 판단하진 말자.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낮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성장률은 선진국보다 늘 높았다. 내년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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