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버냉키 초강수 … 매달 400억 달러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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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파격적 승부수를 던졌다. 물가 불안에 대한 연준 안팎의 우려를 뿌리치고 경기부양에 ‘올인(다걸기)’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이번 조치로도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으면 추가 수단도 동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13일(현지시간)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내놓은 경기부양조치는 당장 연준이 쓸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한 것이다.

 우선 매달 400억 달러(45조원)씩 모기지(주택담보부)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달러를 푼다. 20개월 동안 총 2조3000억 달러를 찍어낸 1, 2차 양적 완화 조치에 비해 월별 액수는 적지만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 여기다 매달 450억 달러씩 단기채를 팔아 장기채를 사들이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 조치를 연말까지 계속하기로 한 걸 감안하면 장기채 금리 인하 효과는 상당히 클 전망이다. 애초 2014년 말까지였던 ‘제로’ 기준금리 시한도 6개월 연장해 2015년 중반까지 늘렸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승 덕분에 주가가 크게 뛰었다. 14일 코스피지수는 56.89포인트(2.92%) 올라 2007.58로 거래를 마쳤다. 원화가치도 크게 올라 원-달러 환율이 1117원을 기록했다. 이날 오후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여성딜러가 코스피지수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연준이 겨냥한 건 주택시장이다. 집값 하락으로 ‘깡통 주택’이 속출하고 이것이 다시 집값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을 반드시 끊겠다는 의도다.

 일단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화끈한 부양책으로 국제 금융시장을 흔드는 데는 성공했다. 버냉키로선 더 이상 결단을 늦추기 어려웠다. 11월 6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가까울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진다. 공화당이 경기부양책에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왔기 때문이다. 마침 유럽중앙은행(ECB)이 위기국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로 이탈리아·스페인에 떨어진 급한 불을 꺼준 것도 과감한 부양책을 밀어붙이는 데 부담을 덜어줬다.

 이번 조치는 버냉키 개인은 물론 연준의 도박이기도 하다. 달러와 금을 맞바꿔 주던 금본위제도가 무너진 이후 미 연준은 금리와 통화량을 지렛대로 경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왔다. 중앙은행은 장기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가며 세 차례나 양적 완화 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믿음에서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물가 불안만 부른다면 ‘전지전능한 연준의 신화’는 무너진다. 공화당은 벌써부터 금본위제 부활까지 거론하며 벼르고 있다.

 유동성 장세 덕분에 주가만 오르면 좋겠지만, 석유 등 원자재 값이 급등하면 실물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도 있다. 1, 2차 양적 완화 때도 주가보다 원자재 값이 더욱 가파르게 올랐다.

 버냉키 승부수에 또 다른 위험요소는 올 연말 닥칠 ‘재정 절벽(fiscal cliff)’이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감세 법안의 시한과 1조2000억 달러 재정적자 삭감 조치가 한꺼번에 맞물려 의도하지 않은 강력한 재정긴축 효과를 내는 상황이다. 연준이 푼 돈이 미 정부로 빨려들어가면 경기부양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버냉키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재정 절벽을 막기 위한 여야 정치권의 대타협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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