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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유지냐 폐지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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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최근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사형제 존폐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흉악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선 사형제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인권 침해 소지가 큰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반박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형 집행 여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형 문제를 둘러싼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반인륜적 흉악 범죄 억제 위해 필요하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연쇄 살인 사건, 아동 성폭행 등 반인륜적 흉악 범죄들이 발생할 때마다 그 방지 대책으로 사형제가 거론된다. 이는 인간사회가 범죄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형벌로서 사형이 있고 법원에서 최종 판결로 사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즉 사형 집행이 되지 않음에 따라 사형이란 형벌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110조4항)에 사형이 언급되어 있다.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한 경우 단심으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형법에는 형벌의 하나로 사형이 규정돼 있으며, 상당수 형사특별법에 사형이 법정 최고형으로 명시돼 있다. 사법부는 비인간적인 흉악 범죄에 대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경우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15년간 사형 집행이 없었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를 잠재적 사형 폐지 국가를 넘어서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에 와서 사형을 집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형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형제 폐지 법안은 지난 16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논란만 일으키고 폐기됐다. 헌법재판소에도 사형제 위헌소송이 제기됐지만, 두 번에 걸쳐 합헌 결정이 나왔다. 첫 번째 결정과 달리 두 번째 결정은 위헌의견이 과반수에 육박해 혹자는 “결정은 합헌이었지만 내용은 사실상 위헌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헌법에 사형이 언급되어 있는 한 법률로 폐지할 수는 없다. 그 경우 국가의 헌법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형제 폐지를 위해서는 헌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사형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계속돼 온 형벌의 하나다. 그동안 사형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잔혹하게 빼앗은 흉악범을 제거해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또 다른 범죄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통해 흉악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해 왔다. 피해자 측의 원한과 고통을 완화시키고 사적 보복이라는 악순환 고리도 차단한다. 사형제는 살인범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 인간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의 인권과 생명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자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 줄 수는 없다. 법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해친 사람들의 생명까지 무조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이념적으로는 절대적인 생명권도 현실적으로는 법적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자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사형제를 폐지한다고 선진국이 되거나 문명국가·인권국가로 불리지는 않는다. 독일을 위시한 유럽 국가들은 과거 역사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사형제를 폐지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은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는 흉악 범죄가 인류의 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형벌이다. 여전히 연쇄살인이나 아동성범죄 살인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에서 사형제는 국민의 생명 보호와 사회 방어를 위해 필요한 형벌이다. 사형제는 국민의 생명존중이라는 헌법적 가치질서를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유지되어야 한다.

김 상 겸 동국대 법대 교수

오판 가능성에 범죄 예방효과 입증 안 됐다

오경식
국립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아동 성폭행사건 등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맞벌이 및 결손가정 자녀와 정신적·신체적 약자 보호대책 수립, 감시 시스템 강화와 방범카메라 증설, 검문검색 강화, 신상공개제도 강화, 성폭행사건 친고죄 폐지…. 귀에 솔깃한 대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별로 새로운 것이 없는 대책들이다. 그런데 그 많은 대책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사형 집행 재개론이다.

 1997년 이후 15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사형 집행이라는 카드를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다. 흉포한 사건이 나올 때마다 거론되기는 했지만 곧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최근 다시 사형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데는 ‘묻지마 범죄’ 등 강력범죄 탓이 크다. 사형 집행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최근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기본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최근 잇따른 흉악범죄들을 계기로 집중적으로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사형 집행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가가 사람을 죽일 권한은 없다. 또한 사형은 피해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 줄 수 없다. 특히 사형제는 오판의 가능성이 있는 제도다.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목적과 정적 제거용으로 사형제도를 이용한 사건, 즉 사법살인을 경험한 나라다. 사형제도를 반드시 폐지해야 할 중요한 이유다. 당시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채 또다시 사형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정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법무부도 2006년에는 사형제도의 폐지 및 절대적 종신형 도입 여부를 기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제앰네스티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법적으로 사형 폐지 국가는 96개국, 실질적 폐지 국가는 한국 등 35개국, 기타 최근에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를 포함하면 유엔 회원국의 91%인 175개국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특히 2007년 우리가 유럽연합에 범죄인 인도 및 사법공조협약 가입 신청을 했을 때 사형제도 존속을 이유로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법무부는 앞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보내 가까스로 가입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약속을 깨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는 나라가 된다.

 사형 집행이 되지 않아 아동성폭행이나 살인 등 흉악범죄가 발생하는가? 그렇지 않다. 흉악범죄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당연히 인정되지만 사형 집행이 흉악범죄 예방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더욱이 사형 집행으로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으며 사형이 폐지됐다고 해서 범죄가 증가하는 것도 아니라는 건 이미 실증적 결과로서 여러 전문가에 의해 확인됐다.

 우리 사회는 흉악범죄에 흥분해 자극적인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즉흥적 사형 집행 재개라는 감정적 대책은 범죄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범죄 예방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사형 집행을 부활시킬 이유는 없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형식적 사형제도에 대한 법체계를 정비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법률적 사형 폐지 국가로 선포함으로써 국격 상승의 기회로 삼을 것을 권하고 싶다. 어느 쪽이 인권국가로 나아가는 길인지 생각할 때다.

오 경 식 국립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