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내 망설임까지 알아주는 백화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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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회사원 김모(36ㆍ여)씨는 지난 5월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있는 도시락통을 20% 세일해요’. 롯데백화점이 보낸 전단지다. 6세 아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고, 구매를 하면 가족용 피크닉세트도 무료로 준다는 소식에 김씨는 백화점을 찾았다.

김씨는 롯데백화점이 ‘부모 소비자’로 분류한 고객 중 하나다. 유치원ㆍ학원에서 지난 2년간 4회 이상 카드로 결제하고, 백화점에서 아동복을 네 번 이상 구매했으며, 쇼핑할 때 쓸 유모차도 세 번 이상 빌려 쓴 실적 때문이다.

이 백화점은 이런 식으로 ‘아이가 있을 법한 고객’을 추려내 우편물을 보냈다. 롯데카드 이용고객 2500만 명 중 10만 명이다. 이들 중 4만4000명이 백화점을 방문해 구매를 했다. 백화점이 무작위로 세일 홍보 우편물을 보내면 와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약 30%. 고객을 ‘부모’로 세분화했더니 이 비율이 14%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매출도 올라갔다. 이 가정의 달 세일 행사로 올린 매출은 22억원. 지난해보다 8% 늘어난 것이다.

백화점은 이제 고객이 사고 싶어하는 상품까지 분석한다. 구매했던 상품 이력만 모으던 것에서 진화한 것이다. 자녀가 있는지 뿐 아니라 관심사도 체크한다. 골프 레슨비를 카드로 결제하면 골프용품 할인 대전의 안내 우편물을 받게 되는 식이다. 또 온라인몰ㆍ홈쇼핑처럼 저렴한 곳에서 자주 구매하는 사람은 가격에 민감한 유형으로 분류돼 초저가 할인행사에 초대된다.

롯데백화점은 이처럼 돈 쓰는 곳을 세밀히 분석하는 시스템을 올해 초 도입했다. 고객을 부모형ㆍ골프족ㆍ할인민감형ㆍ외모관심형ㆍ연말선물형으로 나눠 각각의 행사를 진행했다. KT에서 영입된 전산전문가 강선희 롯데백화점 고객전략팀장은 “경기 침체기에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고객들을 좀 더 세밀하게 나눠 사고 싶어하는 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며 “연령ㆍ소득수준 뿐 아니라 가족관계ㆍ관심사 같은 정보를 분석한다”고 말했다.

◆마음속 상품도 예측=신세계백화점은 고객을 분석하려 40억원을 들였다. 온라인 쇼핑몰인 신세계몰의 시스템을 짜기 위해서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의뢰하고 쇼핑몰 옥션에서 정보기술(IT) 담당자를 데려왔다. 신세계몰은 고객이 살까말까 망설인 상품까지 분석한다. 상품 정보를 클릭했다가 구매하지 않고 창을 닫는 것은 ‘반송률’로 분류한다. 이정재 CRM(고객분석)팀장은 “각 상품의 담당자들은 출근하면 반송률 체크부터 한다”고 전했다. 제품을 사지 않은 원인에 따라 대신 추천할 만한 상품에 대한 정보도 보낸다.

또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결국 사지 않은 상품도 분석한다. 이희진 CRM팀 과장은 “고가의 제품을 사려고 했다가 취소했던 고객에겐 그 제품 할인행사가 있을 때 맞춤형 정보를 e-메일로 보낸다”고 예를 들었다.

상품을 다시 살 시기가 되면 알려주기도 한다. 신세계몰은 물ㆍ화장품ㆍ치약ㆍ비타민과 같은 62개 상품을 ‘재구매 대상’으로 분류했다. 신세계몰 측은 “화장품 브랜드 ‘키엘’의 한 수분크림은 평균 90일마다 재구매가 이뤄지는 것으로 나온다”며 “소비자가 이 제품을 구매하면 80일 뒤쯤에 할인권을 e-메일로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비 올 때 습관도 파악=날씨에 따라 움직이는 고객들도 관심 대상이다. 현대백화점은 2007년 이후 월별 강수량을 우선 뽑았다. 하루 30㎜ 이상 비가 온 날의 소비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화장품+남성 캐주얼’이란 조합을 발견했다. 이 두 상품을 함께 구매한 사람이 맑은 날보다 20% 많았다. 평소에는 혼자 오는 여성 고객이, 비가 오면 남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은 지난달 기상예보에서 강수 확률이 있는 때에 맞춰 행사를 열었다. 화장품과 남성 캐주얼을 함께 사면 금액에 따라 상품권을 증정한 것. 일반 상품권 행사에 비해 매출이 34% 올라갔다. 현대백화점은 이런 식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면 문화홀 공연에 사람이 많이 온다’ ‘비가 오면 라면이 잘 팔린다’는 공식을 만들어 행사ㆍ사은품에 활용하고 있다.

또 비 오는 날 쇼핑을 자주하는 사람에겐 비가 올 때마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다. “우산 챙기세요”란 메시지와 함께 즐겨 구매하는 상품군의 할인 혜택도 넣는 식이다. 비와 관련 없이 할인 혜택만 보냈을 때보다 약 네 배의 고객이 반응해 물건을 구매한다고 백화점 측은 설명했다.

지역에 따른 제품 선호도도 파악할 수 있다. 신세계몰은 ‘광주가 연고지인 야구팀 기아 타이거즈의 팬은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 더 많다’는 결론을 냈다. 지난 4월부터 야구팀 응원복을 판매했는데,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서 60%가 팔렸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ㆍ두산은 연고지에서 60ㆍ80%가 판매됐다. 신세계몰은 6월부터 기아가 원정 경기에서 입는 디자인의 응원복을 첫 페이지에 배치하고 수량도 늘려 준비했다. 홈경기의 응원복은 물량을 줄였다.

백화점은 고객을 점점 자세히 들여다볼 태세다. 롯데백화점 이갑 마케팅부문 상무는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당사자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백화점의 최종 목표”라며 “다양한 고객 분석 기법이 빠르게 개발ㆍ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화점이 아는 당신의 생활

● 아이가 있다 아동복 구매, 유모차 대여
● 외모에 관심이 많다 성형외과 결제, 패션지 구독
● 비가 오면 부부 동반 쇼핑을 한다 우천 시 구매패턴 분석
● 화장품 한 통, 두 달 동안 쓴다 구매주기 분석
● 명절엔 선물 많이 하는 고객 같은 상품 세 곳 이상 동시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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