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8. 다시 찾은 춘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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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KBS 오락 프로그램에서 얼굴에 칠을 한 채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필자.

'똘똘이'라는 사람이 있다. 여관이 고용한 밥값 수금원을 말한다. 극단이 여관비를 내지 못하면 다음 행선지에서 돈을 벌어 갚으라고 선심을 쓰는 여관도 있었다. 그런 경우 똘똘이는 이 고장 저 고장으로 끈질기게 극단을 따라다녔다. 그래서 극단의 재정은 똘똘이 숫자와 반비례했다. 똘똘이 수가 많으면 흥행 성적이 나쁘다는 얘기였다.

호남 지방을 한 바퀴 돌 때였다. 흥행은 참패였다. 그때 '민협'의 꽁무니엔 무려 여덟 명의 똘똘이가 따라다녔다. 한 선배가 똘똘이 수를 세다가 "이제 이 단체도 수명이 다 됐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똘똘이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꽤 나이든 사람부터 열서너 살 애송이까지 있었다. 빈손으로 돌아가 여관 주인에게 욕만 듣느니 아예 수금을 포기하고 극단의 연구생이 되는 똘똘이도 더러 있었다.

똘똘이가 늘어나자 야반도주하는 주역 배우도 나왔다. 당시에는 캐스팅이란 게 없었다. 다른 극단에서 돈을 더 주면 밤에 몰래 도망치는 식이었다. 그게 내게는 기회가 됐다. 엑스트라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남을 돌다가 빈털터리가 된 '민협'은 춘천으로 향했다. 어머니 돈을 훔쳐 떠난 지 꼭 여섯 달 만이었다. 그 사이 단원들의 얼굴이 꽤 많이 바뀌었다. 새로 입단한 똘똘이가 도망간 배우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도 김화자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기차 안에서 단장이 물었다. "2부에서 버라이어티쇼를 할텐데 삼룡이가 노래를 한 곡 부르면 어떨까?" 나는 기차 바닥에 엎드려 넙죽 절을 했다. "진짜죠?" 고향 춘천의 무대에 선다니…. 꿈만 같았다.

춘천에 도착하자마자 봉의산 아래 집으로 내달렸다. 대문을 밀치며 외쳤다. "어머니~이!" 어머니는 맨발로 마루에서 뛰어내려 나를 덥썩 끌어안았다. "아이구 내 새끼, 편지도 한 장 없이…." 어머니는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감쪽같이 사라진 염낭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동안 지냈던 얘기를 죽 늘어놓았다.

"네가 배우가 됐다고? 아이구야! 배우가 다 얼어죽었나 보네."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집 마당은 잔칫집처럼 붐볐다. "극단에선 저를 삼룡이라고 불러요. 오늘 밤 공연에도 제가 나온다니까요." 동네 사람들은 "그렇담 구경가야지"라며 박수를 쳤다.

내 생애 첫 독무대였다. 사회자는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막 돌아온 춘천의 명가수"라고 날 소개했다. 어머닌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남인수씨의 노래 '애수의 소야곡'을 불렀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가 터졌다. 나는 당황했다. 준비한 노래가 한 곡도 없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헛기침을 크게 했다. 그리고 꾸벅 절을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앙코르는 말이지유. 내일 밤에 받으면 안될까요?" 그러고는 휙 돌아서서 무대 뒤로 뛰었다. 등 뒤에서 폭소가 터졌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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