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한국, 백신연구 중심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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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소득이 올라갈수록 백신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세계적으로 백신 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겁니다."

16일 경기도 신갈의 녹십자 백신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다국적 제약사 베르나바이오텍의 최고회사개발책임자(Chief Corporate Development.CDD) 단 엘런스(Daan Ellens.57) 박사의 말이다. 그는 "앞으로 백신 산업이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르나바이오텍은 1898년 설립돼 스위스 본사를 비롯, 독일.한국 등에 165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두고 있는 백신전문 기업이다. 1999년 한국의 녹십자가 백신사업을 위해 설립한 녹십자백신의 지분을 지난해 베르나바이오텍이전량 인수해 자회사로 삼았다. 현재 헤파박스진 등 B형 간염 백신과 소아용 복합백신을 만들고 있다.

엘런스 박사는 "한국에서 10년 전만 해도 독감 백신이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요즘은 겨울이 오기 전 예방접종을 하는 게 낯설지 않게 됐다"며 "소득이 오르면서 자연스레 사전 예방과 사후 치료에 대한 경제적 비용 차이를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점차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이번에 새로 지은 공장에서 생산될 백신들은 대부분 수출하게 된다. 특히 미국.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공장의 모든 설비들은 EU의 우수생산시설규정에 맞춰 제작했다. 독일에서 공장 자체를 미리 만든 뒤 몇 조각으로 나눠 통째로 들여 오는 모듈방식이었다.

앞으로 한국을 베르나바이오텍의 '전문연구거점(Center of Excellence)'으로 육성한다는 게 앨런스 박사의 구상이다. 백신을 대량생산할 뿐 아니라 한국의 우수 인력을 활용, 새로운 백신 개발도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건비.기술력 양면에서 한국은 다른 주변국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며 "생명공학(BT)분야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심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엘런스 박사는 한국에서 백신 산업의 육성을 위해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에선 벤처캐피털들이 신생 바이오벤처기업들에 충분한 자금을 지원해줄 뿐 아니라 직접 사업계획 전략까지 세워주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한국의 작은 바이오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백신 개발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다소 소극적인 한국 연구진들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언어장벽 때문에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위축돼 있는 한국인들을 종종 봐 왔다"며 "백신 개발은 국가간 노하우 교류가 필수적인 만큼 원활한 언어능력을 갖추는 것도 과학자의 중요 덕목"이라고 말했다.

글=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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