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원씨가 읽은 '강가의 아틀리에'外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순수하게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순수함이란 순진함과는 달리 투쟁과 저항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의 화가 장욱진과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작곡가 베토벤. 나는 이들 두 예술가의 삶에서 공통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장욱진의 그림에는 따뜻함과 소박함, 단순함이 살아있다. 때묻지 않은 동심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천재 화가의 타고난 성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민음사) 는 그가 그림의 '순수성' 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말해준다. 손바닥 만한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 7일간의 단식과 은둔으로 공을 들였다는 일화는 구도행위의 경건함으로 다가온다.

메이너드 솔로몬의 『베토벤』(윤소영 옮김, 공감) 은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했던 편지들을 통해 그가 인간적 고뇌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첼로 소나타의 헌정본에 '눈물과 슬픔 속에서' 라는 구절이 적혀있음을 확인한 후부터 이 작품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베토벤은 로시니가 당대 최고의 인기와 명예를 누리던 시절 부호들의 금전적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꿋꿋하게 영혼과 예술의 순수성을 지켰다.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러움이 오만과 독선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저항정신이 없었더라면 작품의 생명력을 잉태할 수 있었을까 싶다.

최근엔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희재 옮김, 해냄) , 프랑크 매커트의 자서전 『Angela' s Ashes』(Touchstone) , 김용택 시인의 시집 『그 여자네 집』(창작과 비평사) 도 감명깊게 읽었다.

양성원 첼리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