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잘 춰야겠다, 왜냐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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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호 30면

얼마 전 국립발레단은 ‘포이즈(poise)’라는 작품을 올렸다. 국립발레단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롭게 만든 작품으로 디자이너 정구호 선생님의 의상과 연출, 안성수 선생님의 안무로 야심 차게 올린 작품이었다. 1년간의 준비 작업, 6개월간의 안무 작업을 거쳤지만 공연 전날까지도 이 작품이 우리에게는 물론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매우 궁금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회전무대. 음향, 조명까지도 새로움에 익숙해지기 전이었다. 그런 6개월간의 노력 끝에 무용수들뿐만 아니라 안무가, 연출가, 조명, 의상, 메이크업, 무대스태프 모두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작품은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작업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 페이지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호평과 혹평을 떠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고 이것은 단지 첫걸음이었을 뿐이었다.

국립발레단은 이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의 첫 단추를 꿰었고 그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발레공연의 단골 메뉴와도 같았던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선율에 맞춰 3명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안무가 선생님들이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발레와 가야금의 만남이라는 새롭고 색다른 시도에 나 또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한국 무용가이자 현재 서울예술단 단장이신 정혜진 선생님의 안무에 출연하는데, 평생을 발레에만 집중해온 나에게 한국 무용과 발레의 접목은 색다른 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많은 인내를 요구하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에게 또 다른 춤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는 기회이고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나는 무대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지 못하니 가끔은 내가 무대에서 어떻게 보일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이 하는 공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가끔은 그 무대에 나를 집어넣어 보는 재미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몸을 움직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쉬는 시간에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나의 취미는 공연 보기나 영화 보기가 되어버렸다. 무용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공연도 즐겨 보는 편이다. 다른 장르의 공연 문화를 감상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휴식을 주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느끼는 점이 많아 내게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요즘에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공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발레 공연뿐 아니라 뮤지컬·오페라 등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단체 공연뿐만 아니라 외국의 유명한 수많은 단체가 한국을 찾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이제 서서히 문화 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공연을 보고 나서 나는 이제 사회 현상이자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SNS 중 하나인 트위터에 감상평을 적어 타인들과 생각을 교류한다. 얼마 전 공연을 보고 이런 글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발레는 종합예술이다. 무용수만 잘해서도 안 되고 음악·조명·안무 모든 게 어우러져야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다. 공연을 하나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과 땀이 들어가는지…. 그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난 춤을 잘 춰야겠다.’

우리는 어떤 문화공연이든 항상 주인공들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주연일 수는 없다. 공연 후 박수를 받는 것은 무대 위의 배우일지라도 그 뒤에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각자 맡은 분야에서 헌신적인 역할을 해주는 수많은 스태프의 노고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다. 아무리 연기자가 잘한다 해도 무대 위의 조명이나 의상, 세트, 심지어 음향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 문화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의 관객들도 공연의 주인공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그 공연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역할들에 주목하고 그 숨겨진 노력에 대해 찬사를 보낼 수 있는 문화적 식견이 필요한 때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적인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사회라는 커다란 공연에 성공적인 하모니를 이루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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