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정책, 민주당과 진보당 사이…가치 공감대 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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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기자

통합진보당이 7일 의원총회에서 신당권파인 비례대표 의원 4명을 제명했다. 신당권파의 지역구 의원 3인(심상정·노회찬·강동원)은 곧 탈당해 자기들이 제명한 비례의원들과 원내 3당을 만들 거란 전망이 나온다. 진보당 에 남는 옛 당권파의 의석 수는 6석이다.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심상정(사진) 전 공동대표는 “다음주 초 탈당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에 대해 묻자 민주당을 “나이브(naive)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 교수에 대해선 “정책 노선은 민주당과 진보당 사이쯤 되는 것 같고, 가치 측면에선 공감대가 크다”고 호감을 보였다. 의원실 벽엔 심 전 대표의 손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아래엔 안 교수의 멘토로 불리는 법륜 스님의 사인이 선명했다. 심 전 대표는 “평화재단에서 강연할 때 찍은 것인데, 법륜 스님이 사인해줬다”고 설명했다.

국민 검증 거치는 게 진보 살리는 길
-신당권파는 어쩌다 같은 신당권파 비례의원들을 ’셀프 제명’하게 됐나(비례대표는 탈당하면 의원직을 자동상실하지만 제명당하면 무소속 의원으로 남는다).
“총선 후 4개월간 고통스러웠다. 비례대표 부정·부실 선거에서 문제가 비롯됐지만 근본적으로 옛 당권파와의 정치에 대한 인식차도 확인했다. 진보 정치 내엔 노선 차이를 민주적 질서로 조정할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의사가 시한부 판정을 내렸어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가족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3일) 이정희 전 대표의 메마른 사과는 말이 사과 기자회견이었을 뿐 결별을 향한 최후통첩이었다. 서로 국민에게 검증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게 진보를 살리는 길이다.”

-옛 당권파와의 가장 큰 갈등요인은 뭐였나. 종북 논란인가.
“대단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서클 형태로 돼 있어 어떤 민주적 절차나 공개 토론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옛 당권파는 과거 NL(민족 해방) 전통을 잇고 있긴 한데 지금은 민족주의 정파라기보다 학연·인맥과 투표 권력으로만 존재하는 정파다. 전투적 민족주의는 분단·냉전 상황에서 남북 평화 공존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패권적 정파 행태를 고집하는 한 대중 정당의 길을 함께 개척하기 어렵다. 진보에서도 현실주의에 입각한 평화 통일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오랜 세월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헌신했던 경험으로 통합했다. 그런데 2007년 옛 민노당 시절에 봤던 구태의 뿌리가 깊어지고 세가 확장됐다. 저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분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함께 가기 어려웠다.”

-향후 계획은.

“다음 주 당원 탈당이 이어질 거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진보진영에 이해를 구한다. 대선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고민하면서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도 논의한다.”

-유시민 전 대표와 함께 탈당하나.
“(탈당은) 주초가 될 거다. 내일(9일) 저녁 진보정치혁신모임을 열어 진로를 논의한다. (유시민 전 대표 등은) 같이 움직인다.”

이정희 대선 출마? 깊이 생각해 판단하길
-새 진보정당에 대한 구상은.
“진보정치의 도덕성은 위기다. 진보는 기존 정당보다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게 있었는데 이젠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다는 불신을 받는다. 노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만 추진기구나 정치기구 형태로 대선을 치르고 대선 이후 창당으로 갈지, 하루빨리 정당 등록을 하고 대선 후 재창당을 할지는 고민 중이다. 노동·농민·여성 등 여러 세력의 동참도 중요하다.”

-독자적으로 대선 후보를 내나.
“후보를 내는 문제는 찬반이 있다. 야당 체제 전반이 흔들리는 상태라면 머릿수를 늘려도 정권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민주당과 함께하나.
“성장제일주의의 대변화를 요구하는 시기다. 어느 때보다 진보정치의 역할이 막중한데 내부 발목이 잡혀 아무 역할을 못했다. 통탄할 일이다. 민주당을 쳐다봐도 안타깝다. 올해 국민 관심은 삶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거다. 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이 믿을 만하다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국민은 민주당을 나이브하다고 본다. 민주당 후보들은 경제민주화나 복지 같은 훌륭한 정책과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땀냄새가 부족하다. 국민이 겪는 삶의 고통과는 거리가 있다. 이젠 그런 어음을 갖고 국민이 권력을 주길 기대해선 안 된다. 강력한 개혁 의지를 국회에서부터 보여야 하는데 전부 바깥 선거 일정만 따라가지 국회는 비어 있다. 민주당의 나이브한 개혁 의지를 진보정치가 메워야 하는데 저희는 실망을 드리고 있어 안철수란 공간이 더 커졌다. 올해 야권연대는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지만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저희가 생각하는 야권연대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사회경제개혁연대다.”

-안철수 교수와 함께하나.
“(안 교수의) 책을 보니 정책 노선은 민주당과 진보당 사이쯤 되는 것 같고, 가치 측면에선 공감대가 크다. 그러나 안철수 선생께서 권력이란 수단을 누구와, 어떻게 다룰 것인지 밝힌 바가 없다. 안철수 선생이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상식파다’라고 말하는 건 국민과 소통하는 언어 방식이다. 정치인 입장에선 상식을 파괴하는 게 몰상식이 아니고, 권력이다. 그런 점에서 권력투쟁의 속성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의 대선 출마설을 어떻게 보나.
“나오고 안 나오는 거야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고 가능성을 주목 받았던 한 여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아픔이 국민에게 큰 것 같고 저도 그렇다. 국민의 애정과 기대를 깊이 생각하며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좌클릭 중인데.
“쌍용자동차 특위 구성도 새누리당 반대로 안 되고 있는데…. 박 후보가 진정 통합을 생각하면 새누리당 정권에서 꿈이 철저히 짓밟힌 삶의 현장부터 찾아 소통하는 게 순서다. 민주주의는 필요할 때 취하는 편의적 가치가 아니다. 다음 국가 지도자는 권위주의 근육을 키워온 사람이어선 안 된다. 민주주의 살결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 공존의 가치를 깊이 내재화한 사람이어야 한다.”

-진보는 어떻게 가야 하나.
“진보는 타격을 받았다. 옛 당권파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고, 제어하지 못한 진보의 리더십 전체에 국민이 실망했다. 인정하고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이 나오고 진보 정치가 지켜온 가치와 의제가 보편화돼 진보 정치 기반은 넓어지고 있다. 25년 노동운동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세 번째 실패(민주노동당·진보신당·통합진보당)를 목전에 두고 있어 개인적으론 힘들지만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진보정당은 필요하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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