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학교폭력 기록은 이념 문제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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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둘러싼 대립이 교육계에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다음 주 대입 수시모집 원서 마감을 앞두고 고교들은 7일까지 고3 수험생의 학생부 기재를 끝내야 한다. 하지만 전북 18곳, 경기 1곳 등 19곳의 고교가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를 미루고 있다. 김승환(전북)·김상곤(경기) 등 이른바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가해학생의 대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기재 보류를 지시해서다.

 경기도교육청은 6일에도 입장을 같이하는 친전교조 단체들과 토론회를 열고 교과부에 반기를 들었다. 반면 보수성향 교육·시민단체들은 “피해 학생의 인권을 아랑곳하지 않는 교육감들이 학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두 교육감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학생부 기재를 둘러싼 갈등이 이렇게 커진 데는 누구보다도 친전교조 교육감들의 책임이 크다. 교과부는 올 2월 6일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 방침을 발표했다. 앞서 전국 교육감들과 대책안을 논의하는 자리도 가졌다. 하지만 지난달 초 국가인권위가 학생부 기재에 대해 ‘일부 보완’을 권고하자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인권위가 “학생부 기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정의 문제점을 보완하라는 의미였다”고 했지만 반대론자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김상곤 교육감은 “반교육적” “폭력적” “교육 파괴의 종결자” 등의 표현을 쓰며 교과부에 ‘학생부 기재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김승환 교육감은 “이주호 장관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부 기재가 정부와의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교과부에도 책임이 많다. 일부 교육감이 학생부 기재에 반발하자 교과부는 대화 과정도 없이 즉각 ‘특별감사’로 압박했다. “학생부 기재는 학교장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며 학교에는 불호령을 내렸다. 교과부가 연일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으려는 학교 숫자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손을 보겠다”는 완력마저 느껴질 정도다.

 교과부와 교육감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학교는 죽을 맛이다. 학생부 기재를 미루고 있는 전북의 한 고교 교장은 본지와 통화 도중 한숨만 쉬었다. “교과부는 징계하겠다고 하고, 교육감은 걱정 말라니 미칠 지경이에요. 수험생들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14일부터 대학들은 수시모집 선발을 위해 전국 고교의 학생부를 열람한다. 지역에 따라 학생부 기재 기준이 다르다면 그 피해는 수험생들이 보게 된다. 이주호 장관과 김상곤·김승환 두 교육감은 볼썽사나운 대립을 풀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식들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