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히딩크호 "기회는 왔다"

중앙일보

입력

땀방울은 비오듯 흘러내리지만 이상하리만치 선수들의 얼굴은 편안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유머도 여전하다.

자신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아직 심각하지 않은 것일까.

월드컵 개막까지 이제 정확히 1년.

월드컵 경기장은 속속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본격적인 개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21세기의 첫 월드컵, 한국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월드컵을 맞는 한국축구대표팀의 목표는 너무나 뚜렷하다. 16강. 언제는 16강이 목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다섯차례의 월드컵에서 싸운 14차례의 경기 중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오르지 못할 목표였다.

이제는 다르다. 이번엔 홈그라운드다. 현지 적응을 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다. 생소한 곳에서 상대 응원단의 함성에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산뜻하게 새로 지은 축구전용구장에서 수만명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편안히 싸울 수 있다. 세계적인 지도자도 초빙했고, 지금까지 없었던 온갖 지원도 쏟아진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대비해 훈련중인 대구 수성구민구장에는 요즘 힘이 넘쳐 흐른다.

선수들은 어느새 히딩크 감독의 스타일에 '전염' 됐다. 유상철(30) 보다 여덟살이나 어린 송종국(22) 이 유선수의 패스를 받아 오른쪽 사이드 라인을 파고들다 센터링을 날린다. 자신에게 패스해 달라는 표시로 "상철" 하며 이름을 부르는 '하극상' 같은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하석주(33) 는 축구공을 가지고 하는 피구 훈련에서 공을 든 술래가 다가오자 급한 김에 히딩크 감독의 양 어깨를 감싸쥐며 등 뒤로 피한다.

훈련 분위기는 자유롭고,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간격이 없어졌다. 선수들은 훈련만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나지만 코칭 스태프의 '남은 시간' 은 선수들에 대한 분석 시간이다. 비디오 분석관이 편집한 훈련 테이프를 1시간 가량 함께 보며 선수들의 장.단점을 세밀히 검토한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방에 전지 크기 괘도를 갖다놓고 수십페이지씩 채워 가며 포메이션 구상을 메모한다.

월드컵 16강이라는 목표가 결코 쉽지 않지만 히딩크 감독이 조심스레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이유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한국의 수비진이 약하다고 하지만 개인별 테크닉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비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는 것이다. "다만 하나 둘씩을 합해 열한명을 이루는 팀 전력은 세계 최고 수준과 엄연히 격차가 나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남은 1년간 그 격차를 줄이는 것" 이라고 말한다.

"2002년 월드컵을 향하여 힘차게 뛰자. "

지난 1월 울산 강동구장에서 대표선수들을 처음 만난 히딩크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내뱉었던 한마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마련된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는 히딩크 감독에게 쓰디 쓴 수능시험이 될 수도 있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왜 수락했느냐" 는 질문에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1998년 월드컵에 출전했었다. 한국 감독직은 또다른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기 때문" 이라고 주저없이 답했다.

히딩크 감독이 택한 도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지, 한국 축구의 미래도 히딩크의 도전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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