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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정해종씨의 '문학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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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이 많던 지난 겨울, 나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있었다. 여행 목적은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시회(성곡미술관. 6월 30일까지) 의 작품 콜렉션이었다.

미술관들은 물론 산골 오지 마을들과 빈민굴을 뒤지고 다녀야 했던 이 고된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감동' 과 '확신' 이었다.

빈민굴의 초라한 노인네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조각 예술의 한 경지를 보여 주던 작품들, 내가 확인한 아프리카 쇼나 조각의 현장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의 결과로 나는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출판기획자에서 아프리카 전문 문화기획자로의 전업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잠재된 갈증은 꽤 오래됐다. 아프리카가 마티스와 피카소, 포비즘과 큐비즘 등 20세기 현대미술실험 작업의 정신적 젖줄임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책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 와 H W 잰슨과 그의 아들이 공동집필한 〈서양미술사〉(미진사) 를 오래 전 읽어뒀기 때문이다.

두 권의 입문서는 매우 탁월한 저술들이다. 선사시대에서 최근의 미술까지 다루면서도 명료성과 균형감각을 놓치지 않는 방대한 지식 체계는 신출내기 문화기획자인 나의 교과서인지도 모른다.

또 헝가리의 예술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작과 비평사) 는 예술 전반에 대한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논리적 설득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꽤 오랫동안 내 책장 로열층에 자리잡고 있다.

문학과 출판, 전시기획 등 내가 해 온 일들의 뒷심을 길러준 책이 이것이고, 앞으로도 내 손 닿은 곳에 두고 싶은 책이다.

특정 장르의 예술에 대한 근거 없는 아집을 버리게 해주었던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새길) , 조각의 예술적 이해에 깊이를 더해 준 톰 플린의 〈조각에 나타난 몸〉(예경) 등도 최근 나의 직업적 전환기에 직.간접적으로 용기를 불어 넣어준 책으로 꼽고 싶다.

정해종 시인 터치 아프리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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