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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서 10년 달동네서 36년 길 위의 신부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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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66년 봄, 뉴질랜드의 스물다섯 젊은 사제(司祭) 로버트 존 브레넌은 ‘한국’으로 떠나라는 선교회의 지시를 받고 낯선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해 대학로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만난 서울대 학생들이 한국 이름도 지어 줬다. 천주교 삼양동 선교본당 안광훈(71·사진) 신부 얘기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전화기술자 아버지와 천주교 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 신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드니에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해외선교단체)에 입회했다. 65년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으로 왔다.

 첫 부임지는 강원도 삼척의 한 성당. 1년 뒤 정선의 탄광촌 성당으로 가 10년간 있었다. 안 신부는 72년 30여 명의 주민과 함께 100원씩 모아 저소득층을 위한 정선신협을 세웠는데, 지금은 자산이 4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75년에는 무의촌(無醫村)이던 정선에 ‘성프란치스코 의원’도 건립했다.

 안 신부의 헌신은 81년 부임한 서울 목동성당에서도 계속됐다. 안 신부는 재개발현장에서 쫓겨나는 철거민을 위해 성당을 개방했고, 시흥시의 땅을 사 철거민을 위한 ‘목화마을’을 조성했다. 교회를 벗어나 그가 사회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유명한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나를 탄광촌으로 보낸 사람이 지 주교였다”며 “그가 집전하는 시국 관련 미사를 보며 교회는 주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92년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성골롬반 신학원 원장에서 물러난 그는 재개발 바람이 부는 강북구 미아동 달동네에 전세방을 얻었다. 재개발 주민들의 이주단지 기금 확보를 위해서다. 끈질긴 노력 끝에 미아 7동에 임시 이주단지를 건립했다. 그는 “재개발로 나도 세 번이나 쫓겨났지만 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탄광촌 빈민, 재개발 철거민 등 약자를 위해 봉사한 지 46년. 스물다섯 살 팽팽했던 그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파였다. 지금은 취업상담·주거복지센터·소액대출은행을 운영하는 삼양주민연대 대표다. 안 신부에게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한 고 이태석 신부와 닮았다고 하자 “이태석 신부님은 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다”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시는 안 신부를 올해 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4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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