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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뽀개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6호 27면

주말 휴일. 내겐 휴~ ‘일(요일)’이다. 헌신해봐야 헌신짝 된다. 하는 일마다 꼬인다. 슬픈 노래 가사는 다 내 이야기 같다. 이런 인생으론 자서전도 쓸 수 없다. 전화기 전원이 반나절 정도 꺼져 있었는데 부재 중 전화, 문자메시지 하나 없다. 티끌, 모아봐야 티끌이다. 이런 상태를 요샛말로 ‘멘붕(멘털 붕괴)’이라 한다. 어찌 나뿐이랴. 성경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 역시 멘붕에 빠졌음을 본다.

삶과 믿음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소리로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시편 102장 3-7절). 이 짧은 구절에 현대 심리학의 핫 이슈들이 다 녹아 있다. 탈진(脫盡), 거식증이 있다. 낙심이 찾아들고 슬픔이 밀려온다. 쇠약도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든다. 불면증까지 덮친다. 사면초가다
.
꼭 내 마음만 같다. 따분하다. 재미가 없다. 매사가 귀찮다. 별거 아닌 일에도 화가 치민다. 아내와 아이들이 서로 속닥거리며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게 나를 소외시킨 것 같아 섭섭해진다. 울컥 화가 치민다. 젊어서의 불같은 성질이 재발된 듯해 더 절망스럽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귀신같이 찾아온 복부비만. 갑자기 내가 미워진다. 당뇨·고혈압·심근경색 등 온갖 병명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며 종종 멍해진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내가 아니다. 늘어진 피부, 얼굴 곳곳에 피어난 잡티와 기미, 입 주위의 팔자 주름. 서글퍼진다.

전문가들 얘기론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의 반란(反亂)이란다. 그러고 보니 저녁시간, 아내와의 잠자리도 흥미를 잃은 지 오래됐다. 의무전은커녕 방어전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부부 금실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고 규칙적인 성생활이 결혼생활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을 왜 모르랴. 몸이 반란을 일으키니 도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는 거다. 어디 가서 고해성사라도 하고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 등 푸른 생선처럼 팔딱거리던 내 심장은 어디로 가고 조마조마하는 새가슴의 중년이 되었단 말인가. 도대체 중년이 무엇일까를 묻는다. 누군가 그랬다. 중년은 쉼표라고. 더구나 신은 종종 병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많은 신음과 고통소리가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들며 두드리는 그분의 손길이었다니…. 앞서 인용한 성경 속 다윗은 사면초가의 삶을 어떻게 이겨냈던 것일까. 다시 성경을 뒤적인다.

“내 삶의 모든 조각을 다 맡겨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작품을 만들어 주셨다. 내 행위를 깨끗이 하자, 내게 새 출발을 허락해 주셨다. 진정, 나는 하나님의 도에 늘 정신을 바짝 차렸고, 하나님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매일 나는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을 유심히 살피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는 듯,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딛는다. 내 마음을 열어 보여 드리자, 하나님께서 내 인생 이야기를 다시 써 주셨다.”(삼하22장 21-25절) ‘다시’란 말에 쿵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아, 그거였구나! 이제는 중년기가 아닌 ‘갱년기(更年期)’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송길원 가족생태학자.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 트위터(@happyzzone)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교회의 소통을 지향하는 문화 리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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