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한폭탄 ...국가부채와 LNG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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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29면

오는 15일은 일본 전자업체 샤프가 창업 100년을 맞는 날이다. 샤프가 어떤 회사인가. ‘샤프펜슬’이나 ‘구멍 없는 혁대’부터 시작해 LCD·TV 등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회사다. 또 일본 종신고용 문화를 대표하던 기업이다. 하지만 100주년을 앞둔 샤프의 분위기는 참담하다. 대규모 감원과 사업장 폐쇄·매각 등 전례 없는 구조조정을 하는 와중에 신용평가회사로부터는 투자부적격(투기) 등급을 받는 수모까지 당했다. 30~40년간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전자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잃어간다고는 했으나 두들겨 맞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해진 것은 최근 1~2년 사이다.

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돌아보면 결정적 한 방은 동일본 대지진과 이 재앙의 전이였다. 가파른 경사면에 쌓인 눈, 새로 눈이 내려도 얼마 동안은 별일 없이 쌓인다. 임계점에 이르게 하는 건 한 송이 눈일 수도, 고요를 깨는 한 발의 총성일 수도 있다. 강력한 지진은 거대 쓰나미를 만들었고, 지진과 쓰나미는 원자로를 박살냈다. 그 뒤 공급 체인 붕괴와 엔고(円高), 전력난이 이어졌다. 체력이 떨어진 틈에 급소를 맞은 간판 기업들은 큰 내상을 입었다.

대지진은 기업뿐 아니라 일본이란 나라 자체의 약점들까지 노출시켰다. 우선 대지진 이후 원전 공포 때문에 기존 원전을 가동하는 것도, 새로 짓는 것도 어려워졌다. 더 많은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장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응급 대안이다. 일본의 LNG 수입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다. 그러자 이번엔 무역수지가 적자 수렁에 빠졌다.

또 다른 약점은 나랏빚이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나 되는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는 그리스는 저리 가라다. 경사면의 눈처럼 차곡차곡 쌓였지만 평온한 빚이다. 금리는 낮고 국채는 잘 팔린다. 일종의 국채 거품이다.

그런데 두 약점, LNG와 국가부채는 폭탄의 원료와 같다. 뒤섞으면 특정 조건에서 시한폭탄이 된다. 가령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해 LNG나 기름값이 치솟는다고 하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경상수지 적자는 어느 순간 일본 국채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금리를 임계점까지 밀어올릴 수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장기금리가 4%포인트 정도 상승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빠져들었다. 부채가 많은 일본이라면 장기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아도 재정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 정부 자본 비용이 2%포인트 상승하면 이자 지급 비용은 GDP 대비 4%포인트, 실로 20조 엔이 증가하고, 이를 세금으로 충당하려면 8%포인트 상당의 증세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와 있다. 이자 지급 비용이 증가하면 재정적자는 더 불어난다. 덩달아 장기금리가 더 오른다. 이것이 일본에서 거론되는 ‘복합위기’다.

이런 위기 시나리오의 교훈이라면 대지진이 낳고 있는 정치·경제적 연쇄 반응에 주목한 점이다. 나비효과가 아니더라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참사는 시스템 규모로 제한된다지만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이미 충분히 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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