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내부거래 186조 … 1년 새 41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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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전년보다 늘어났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계열사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경향도 더 뚜렷했다. 경제민주화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여전하다는 의미다.

 3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46개 대기업 집단(자산 5조원 이상)의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했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공정위 조사 결과, 46개 대기업 집단의 전체 매출액(1407조2000억원) 중 계열사끼리의 내부거래는 186조3000억원, 13.2%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내부거래 금액은 41조6000억원(28.7%),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1.2%포인트 늘었다.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은 STX로, 전체 매출의 27.64%가 내부거래였다. 이어 SK(22.09%), 현대자동차(20.68%), OCI(19.7%) 순이다. STX는 지난해 이라크 재건사업(사업비 1조원)을 수주하면서,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에서 SK종합화학과 SK에너지가 분사하면서 내부거래가 크게 늘었다.

 내부거래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선 내부거래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내부거래로 생긴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공정위에 따르면 그룹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가진 계열사일수록 내부거래가 많았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미만인 업체(1052곳)는 내부거래 비중이 13.13%에 그쳤다.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55개 업체는 이 비중이 46.81%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37.89%보다 크게 늘어났다.

 총수 일가 중에서도 총수 2세가 가진 지분율이 높을수록 이런 경향은 뚜렷했다. 총수 2세가 지분 100%를 가진 7개 기업은 매출 중 내부거래 비중이 평균 58.1%에 달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서림개발은 지난해 매출 중 74.7%가 내부거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스앤씨는 매출의 58.1%가 계열사 간 거래였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2세 승계와 편법적 재산 상속 수단으로 내부거래를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말했다.

 내부거래는 대부분 수의계약 방식으로 거래처가 선정됐다. 시스템통합관리(SI) 업종은 내부거래 금액 중 95%, 물류업종은 99.5%가 수의계약이었다. 수의계약 남발은 중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을 아예 차단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경쟁입찰을 늘려 외부에 사업 기회를 개방토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지난해부터 거셌다. 지난해 말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에 증여세를 매기도록 세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는 일감 몰아주기 차단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달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내부거래 목적의 계열사를 새로 편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제민주화 2호 법안도 발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기업 내부거래는 더 늘었고,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은 선거 때면 으레 정치권에서 공격을 가하다가 선거 뒤 흐지부지될 거라고 보기 때문에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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