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잡학사전 (29) - 볼을 잘 치는 타자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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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빙그레 이글스에서 활약했던 이강돈은 '마구잡이 타법'으로 유명하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만 골라 쳐라'라는 타격 지침이 통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강돈은 어깨 높이로 들어오는 공이나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을 가리지 않고 마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물론 그만큼 그는 뛰어난 배트 컨트롤을 자랑했다.

메이저리그에도 '마구잡이 타법'의 시대가 도래했다.

타율이 높은 타자들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선구안은 그리 좋지 않지만 공을 맞히는 재주가 뛰어난 타자, 공을 맞추는 재주는 뛰어나지 않지만 선구안이 좋아 스트라이크만 골라 치는 타자.

전자에는 노마 가르시아파라(보스턴 레드삭스) · 블라디미르 게레로(몬트리올 엑스포스) · 이반 로드리게스(텍사스 레인저스)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볼을 안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마이크 피아자(뉴욕 메츠)와 에드가 마르티네스(시애틀 매리너스)다. 물론 마르티네스는 가장 부드러운 스윙을 가지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이지만, 그의 고타율은 철저한 '볼 골라내기'에 의한 것이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극심한 '타고투저'를 개선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했고, 이는 타율 · 득점 · 볼넷 · 방어율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을 위로 끌어올린 이 조치는 투수중에서도 높을 볼로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파워피처나 큰 각의 변화구를 가진 투수에게 유리하다.

실제로 포크볼의 노모 히데오(보스턴 레드삭스)나 너클커브를 갖고 있는 웨이드 밀러(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약진이 돋보이는 반면, 제구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톰 글래빈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타자들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타자들의 선구안은 단숨에 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타자들은 마이너리그서부터 최소 5년 이상을 자신의 선구안을 갈고 닦는데 소비했다. 따라서 타격시 보다 선구안에 의지하는 타자들일 수록 타율이 낮아질 여지가 큰 것이다.

반면 배트 컨트롤 중심의 타자들에게 가는 영향은 적다. 이미 이들은 스트라이크 존이 확대되기 전부터 볼을 치는데 익숙한 타자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일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 이치로는 오릭스 불루웨이브 시절 실제로 원바운드 공을 안타로 연결시켰을 만큼, 터무니없는 공도 안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매니 라미레스도 같은 경우다.

메이저리그에서 선구안을 가장 중시하는 팀 중의 하나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시즌 초 큰 곤욕을 치뤘다. 자신의 선구안에 혼선을 빚은 젊은 타자들이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로 인해 타자들의 숙제는 더 많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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