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고독한 입장이 특정한 입장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논자들에게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실상 진실은 이러한 철저한 고독과, 단선적인 흑백논리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유의 언저리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만약 그러한 태도가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는다면, 나는 그 비판을 기꺼이 접수하겠다. "
속 것들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만물이 푸른 5월, 글쓰기가 얼마나 투명해야 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여느 때보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는 최근 평론집 『비평과 권력』(소명출판.1만원) 을 펴내며 고독과 자유를 말하고 있군요.
권씨는 주류의 어떤 비평가 집단에도, 그렇다고 거기에 반대하는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 안되는 중견평론가입니다.
이 책에서 권씨는 주류의 비평가 집단과 또다른 비평가 집단, 그 사이에서 비평과 권력의 문제를 논쟁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작품을 분석.평가하는 비평에는 그 속성상 권력이 따르게 마련인데도 이익이나 권력을 위해 작품을 상찬하거나 비판하는 비평적 자세를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권씨는 "그 누구도 무수한 인연의 고리와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에서 비평가는 그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울수록, 고독할수록,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비평을 쓸 수 있으리라" 고 되묻고 있습니다.
"천도(天道) 도 옳으냐 그르냐 물어야 하거늘 지상의 한 시인이 남긴 것들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
고은 시인은 『창작과비평』여름호에 실린 평론 '미당 담론' 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이 그르다고 준엄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자신을 시단에 내보낸 스승이면서 "불가결의 혈연으로 시작된 그 인연" 의 고리를 단호히 끊으며 미당의 친일과 권력지향적 삶을 시에 대입하며 삶과 시를 전면 부정하고 있더군요.
미당의 부정적인 측면은 그의 생전에도 일부 문인, 특히 참여문학 진영의 젊은 문인 등에 의해 많이 지적되었지요. 그 쪽의 큰 어른이랄 수 있는 고씨가 미당에 대한 부정론의 '결정판' 을 내놓은 것으로 읽힙니다.
"돌아간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라려. 그 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
김지하 시인은 다음주 나올 『실천문학』여름호에 실린 대담에서 1991년 5월 이른바 '분신(焚身) 정국' 을 질타한 칼럼 '죽음의 굿판 걷워치워라' 가 잘못됐다며 사과하고 있습니다.
신화적 선배로 알고 있던 김씨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적인 발언에 마음 아팠을 당시의 운동권에 유구무언이라 사죄하며 화해를 청하고 있습니다.
고은씨는 평론 마지막 부분에 미당시 '다시 비정(非情) 의 산하에' 두 행을 인용해 놓았더군요. "탈색과 표백은 아직도 덜 되었는가?/백의동포여. " 라고.
위 세 분의 글을 읽으며 글의 준엄함에 숙연해지는 한편 아직 표백이 덜 된 백의민족의 산하에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옥죄고 있는, '비평과 권력' 의 그 무엇이 여전한 것 같아 착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