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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잘먹는 탤런트가 예뻐" 조리담당 이차교씨

중앙일보

입력

16일 오후 여의도 KBS 별관 C스튜디오.

일일 드라마 '우리가 남인가요' 의 촬영이 한창일 때 스튜디오 한켠에선 극중 소품으로 쓰일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곰탕을 데우고, 부침개를 접시에 담는가하면 커피를 끓이고, 과일을 깎고…. 녹화가 시작되기전 KBS 별관 1층의 10여평 남짓한 조리실에서 미리 만든 음식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작업하는 중이었다.

이 일을 맡고 있는 KBS 아트비전 조리실 이차교(50.여) 실장은 지난 20년 동안 KBS 드라마에 쓰인 대부분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왔다.

요즘도 '우리가 남인가요' 를 비롯해 일일 아침극 '매화연가' 와 '꽃밭에서' , 주말극 '푸른안개' , 일요드라마 '학교4' , 시트콤 '멋진친구들' 을 맡고 있다. 직함은 실장이지만 부하 직원은 한 명뿐.

1979년 KBS에 입사해 의상과 소품쪽 일을 하다 81년 일 손이 부족한 조리실로 우연히 발령난 뒤 줄곧 이 일을 맡게 됐다.

"처음엔 탤런트들 보는 게 참 신기했는데 이제는 거의 매일 보니까 하나도 다른 게 없네요. 아무래도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이 제일 좋지요. "

극중에 쓰이는 음식은 실제 음식과 다를 바가 없다. 연기자들이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려면 맛과 향, 색깔 등 모두가 제맛이 나야한다.

연출자가 극중 사용할 음식을 소품 담당에게 말하면 그가 다시 이실장에게 음식을 의뢰한다.

예를 들어 조리표에 '장소 : 주방, 육수의 간을 본다. 수육을 썬다. 야채를 다듬는다' 고 돼있으면 육수, 수육과 다듬어진 야채, 칼.도마를 준비하는 식이다. 식사뿐만이 아니라 병실의 물컵, 주전자, 커피잔 등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은 다 이실장의 몫이다. 그래서 먹는 장면 촬영이 한 밤중에 잡혀있으면 이실장도 대기해야 한다.

똑같은 일만 20년간 하다보니 이제는 음식에 따라 드라마를 분류할 수도 있게 됐다.

"일일극하고 시트콤이 밥 먹는 장면이 제일 많지요. 특별히 큰 사건이 있기보다 일상 생활을 그리는 거니까요. 드라마의 처음 부분에 음식이 많이 들어가요. 아무래도 사람들 인연 맺어주려면 같이 밥 먹는게 필수잖아요. "

드라마에 쓰인 음식은 대개가 버려진다. 현실에서도 아침에 먹던 음식을 저녁상에 그대로 내놓는 법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요즘은 날씨가 더운데다 조명을 쐰 음식은 더 쉽게 상해 늘 조심스럽다. 하지만 촬영 시간이 저녁때와 겹치거나 출출해지기 쉬운 오후 시간대엔 가끔 연기자들이 먹어치우기기 한다.

"며칠전에 시트콤 찍을때 남희석, 유재석이 김치찌개를 얼마나 잘 먹던지…. 그 친구들 참 잘먹으니까 좋아요. "

술의 경우엔 노하우도 생겼다.

"양주는 보리차보다 콜라와 생수를 섞는게 더 그럴듯 해요. 한약의 경우 예전엔 보리차를 태워서 썼는데 연기자들 몸에 안 좋을까 걱정 많이 했죠. 콜라를 미리 따라서 김을 빼고 나니 한약보다 더 그럴싸해요. "

맥주는 거품이 필요해 진짜 맥주를 사용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베지밀, 소주는 생수를 사용한다.

"열심히 한 상 차려놨는데 탤런트들이 먹는 모습만 찍고 음식을 제대로 안 비쳐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어요. 또 부부싸움하다 밥상 엎는 것도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요. " 그런 야속함 뒤에는 음식에 들이는 이실장의 정성과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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