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볼라벤, 뒤따라온 덴빈에 밀려 비 뿌릴 틈도 없이 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통째 뽑힌 600살 천연기념물 28일 충북 괴산군 삼송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290호인 수령 600여년 된 ‘괴산 삼송리 왕소나무’가 볼라벤의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뿌리가 뽑힌 채 쓰러져 있다. [괴산=뉴시스]

태풍 볼라벤은 제주도와 서·남해안에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혔다. 반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피해가 예상보다 적었다. 이처럼 지역별 피해상황이 엇갈린 이유는 뭘까.

 28일 기상청에 따르면 볼라벤의 세력 자체는 과거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던 루사(2002년)나 매미(2003년) 못지않았다. 볼라벤은 27~28일 이틀 동안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에 748㎜의 기록적인 비를 퍼부었다. 또 완도에서는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51.8m에 이르렀다.

풍속으로만 따지면 역대 태풍 중 5위에 해당한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광주 무등봉의 기상자동측정망(AWS)에서는 초속 59.5m가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볼라벤이 동반한 강풍과 폭우는 제주도와 광주·전남 지역에 집중됐다. 한반도에 접근하면서 태풍에서 강하게 불어나온 남풍 계열의 바람이 이들 지역에 먼저 부딪혔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27일 밤부터 28일 새벽까지 태풍에 앞서 제주도에 도착한 비구름이 한라산에 막혀 한동안 정체현상을 보였다. 이 사이에 많은 비가 한라산 일대에 집중돼 피해를 키웠다.

 이 비구름은 뒤따라온 태풍의 강한 바람에 밀려 미처 비를 뿌릴 틈도 없이 북쪽으로 밀려 올라가 버렸다. 이 덕에 제주도와 달리 서해안 등지에는 강수량이 100㎜ 미만에 그쳤고 폭우와 침수 피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숨뿐인 복숭아밭 태풍 볼라벤이 지나간 28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 매천리의 한 복숭아밭에서 농민 김덕현(75)씨가 강풍에 찢겨 넘어진 나무를 세우고 있다. [영동=연합뉴스]

 태풍이 육지로 상륙하는 대신 해안에서 100㎞ 안팎의 거리를 유지하며 북상한 것도 피해를 줄인 요인이다. 게다가 북쪽에서 내려온 상층 기압골이 태풍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북상속도도 빨라졌다.

강풍과 줄다리기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 호매실중학교에서 교직원 20여 명이 강풍으로 무너지려는 철제 담장을 밧줄로 고정시키고 있다. 학생들은 휴업으로 등교하지 않았다. [수원=뉴시스]

 태풍 루사는 2002년 당시 남해안 고흥반도에 상륙해 거의 24시간에 걸쳐 육지를 관통하며 속초로 서서히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산사태 피해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는 볼라벤보다 세력이 약했지만 강화도에 상륙한 탓에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기상청 나득균 대변인은 “태풍이 육지에 상륙하면 세력이 약해지기는 하지만 상륙 초기에는 그 위력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어 피해가 많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태풍 북상시간이 서해안 만조시간과 겹치면서 발생이 우려됐던 해일도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기상청 서장원 해양기상과장은 “하루 두 번의 만조 중 한 번은 바닷물이 높게, 한 번은 약간 낮게 밀려드는데 태풍 북상시간에는 낮은 만조시간이어서 해일 피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하룻밤 새 900억원 어치 전복 사라져 '넋나간 완도'
▶ 화물선 두동강·벽돌 날벼락…남부에 집중피해
▶ 볼라벤 지나가자 덴빈 31일 새벽 제주 도착
▶ "시민들 과도한 대비" 대형마트 양초·손전등 불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