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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EU 돈세탁국 제재싸고 '싸움'

중앙일보

입력

‘검은 공기’에 이어 ‘검은 돈’ 문제로 미국과 유럽이 또한번 마찰을 빚고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교토의정서 준수를 거부한 데 이어 최근 조세도피와 돈세탁 국가들에 제재를 가하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OECD는 지난해 6월 조세 도피.돈세탁의 문제가 많은 35개 국가의 명단을 발표하고 올 7월까지 이들 국가가 금융제도를 투명화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기로 결의했다.

연간 1조달러(약 1천3백조원)에 이르는 '검은 돈' 세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이 계획은 유럽연합(EU)이 주도했으며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미 부시 행정부의 폴 오닐 재무장관은 지난주 "OECD의 계획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미 정부의 경제.재정 정책과 부합하지 않는다" 고 말해 미국의 방향 선회를 분명히 했다.

16일 파리에서 열린 OECD 재무 각료이사회에 참석한 미측 대표도 "새 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방향이 올바른지 살펴볼 의무가 있다" 며 오닐의 발언을 재확인해 EU 각국의 장관들을 난감케 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절세를 목적으로 하는 조세 도피와 불법자금을 합법화하는 돈세탁을 혼동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카리브해 연안 빈국들의 경우 조세부담을 줄여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경제발전 수단이 없는 만큼 제재보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은 미국이 빈국보다 자국기업 보호를 위해 금융범죄에 대한 국제협력의 틀을 깨려 한다며 미국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정부의 묵인 아래 '조세천국' 국가에 해외판매법인(FSC)을 차려놓고 세금을 피해가며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해왔다는 게 유럽의 시각이다.

FSC가 부당한 수출지원에 해당한다는 국제무역기구(WTO)의 판결에 따라 미 기업들은 FSC를 대체할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 역시 유럽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주장에도 자신들의 이해가 깊숙이 배어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가 높은 유럽국가들의 경우 조세천국을 뿌리뽑아야 심각한 국내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계획이 마약.매춘.밀수 등에서 나온 불법자금의 돈세탁 근절을 목표로 하면서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반면 유럽은 자본에 대한 과세율의 국제적 조화를 은근히 내세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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