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마저 채무조정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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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시장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말 2000회계연도 사업보고서가 공개된 직후다. 채권단은 결국 재정 주간사를 선정해 현대상선을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석유화학.현대건설.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의 유동성 위기가 더 번지기 전에 대응을 하자는 것이다.

◇ 부채비율 1천% 육박〓영업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의 각종 지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적자 규모는 3천1백4억여원. 영업이익 4천5백78억원의 전부나 다름없는 4천5백47억원이 이자로 나갔다.

대규모 적자의 주범은 유가증권평가손실 7백12억원, 투자자산처분손실 1백18억원, 외화환산손실 3천4백98억원 등이다. 현대건설에서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물려받은 현대상선은 최근 부도난 고려산업개발과 대북사업 추진체인 현대아산, 이미 채무조정을 추진한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주식가치가 떨어져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다가 환율이 올라 해외 빚부담이 커졌다.

이 결과 1분기에 7백3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백15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과 대비된다. 전체 빚도 급증해 1999년말 4조6천1백52억원이던 부채는 지난 3월말 6조7천2백13억원으로 늘었다. 1년3개월 동안 46%(2조1천61억원)나 증가한 것이다.

◇ 몸 사리는 금융기관〓현대상선은 영업기반이 좋고 수익성도 괜찮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장부상 지표들이 악화하자 금융기관들은 몸조심을 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등으로 곤욕을 치른 금융기관으로선 다른 현대 그룹사에 대한 여신도 꼼꼼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 채무조정까지 갈까〓현대상선에 대해 대출금리 인하, 상환일정 조정, 출자전환 등 부채구조 개편이 단행될지는 주간사의 경영진단 결과에 달려 있다. 시장이 현대상선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업종특성을 고려해 여신회수 등 극단적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신뢰회복 조치 정도로 자문사의 임무는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반도체의 재정주간사인 샐러먼스미스바니(SSB)가 부채구조개편안을 들고 외자유치에 나선 것처럼 현대상선의 재정 주간사도 외자유치 같은 수혈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채권단과 금감원은 이상 징후가 확산되기 전에 다각적인 신뢰회복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생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평가기관이 평가등급을 낮춘 뒤에 움직이면 손 쓸 여유가 없다" 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ksline@joongang.co.kr>

◇ 채무조정〓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직접 이자를 깎아주거나 빌려준 돈의 만기를 연장해줘 기업의 빚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현대건설처럼 금융기관이 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도 대표적인 채무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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