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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철가방’ 청년 … ‘대한민국 명장’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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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정희

서정희(44)씨가 중국 요리와 연을 맺은 건 1984년이었다. 부산기계공고 2학년 때, 동네 중국집에서 ‘철가방’(요리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난하고 허기졌던 그에게 풍성하고 기름진 중국요리는 ‘꿈’이 됐다.

 이듬해 졸업한 서씨는 본격적으로 중국요리에 뛰어들었다. 중국 요리점에서 7년 간 ‘내공’을 쌓은 뒤 1991년 부산에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상호는 ‘아방궁’.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처럼 중국요리의 ‘천하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담았다.

 그 후 21년. 서씨는 꿈을 이뤘다. 고용노동부·한국산업인력공단은 28일 그를 최고의 숙련기술인을 가리키는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했다. 국내 요리 명장은 8명. 중식 분야 명장은 그가 최초다. 서울 특급호텔 주방장이 아니라 지방 중식당 ‘오너 셰프’가 명장에 오른 것도 처음이다. 북구 만덕동의 단층 66㎡ 가게로 시작한 ‘아방궁’은 현재 동래구 온천동의 3층 건물 660㎡(200평) 규모로 10배나 커졌다.

 “중국요리는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육체적으로 고되죠. 돈을 좀 벌면 전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전 동네 중국요리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신념으로 한 우물을 팠습니다.”

 서씨는 매일 값싼 짜장면·짬뽕을 뽑으면서도 ‘나만의 고급 중국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했다. 주경야독이었다. 한식 궁중요리도 배워 2005년 가장 따기 힘들다는 조리기능장 자격을 땄고, 이듬해엔 대학에서 조리와 중국어를 복수전공했다. ‘본토’ 요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짜장면 면발 연구로 조리예술학 석사학위까지 땄다.

 2008년 ‘중국요리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베이징 세계 중국요리대회에서 자신이 개발한 냉채 요리로 은메달을 땄다. 팔보오리탕 등 특허도 셋이나 갖고 있다.

 명장에 오른 서씨의 다음 꿈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요리박물관·체험관을 짓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고된 주방일을 못 견디고 포기합니다.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고용부는 이날 서씨와 함께 김순자(58)씨 등 27명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했다. 한성식품 대표인 김씨는 86년 종업원 1명의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김치 회사를 매출액 500억원의 기업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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